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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의 건축, 예술로 읽다] 칸딘스키 ‘원 속의 원’ 닮은 도심 속 추상화 한 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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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안에 점과 선, 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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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는 사실적인 형체를 버리고 단순한 색과 선, 형태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순수 추상화를 탄생시켰다. 작품 ‘원 속의 원(왼쪽)’.

칸딘스키가 세상을 원으로 그렸듯이
건축가도 강남을 동그란 틀로 표현
고층빌딩 일색인 회색 도시에 파격

클로드 드뷔시(1862~1918)의 피아노곡 ‘달빛’(Clair de lune)을 듣노라면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다정하게 어우러지는 추상화가 떠오른다. 이 곡을 처음 들은 건 중학교 미술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이 곡을 들려주며 ‘떠오르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보라’고 했다.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교실 전체에 퍼졌고 어리둥절한 표정의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하나둘 뭔가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가을밤 호수에 비친 커다란 달그림자를 상상했다. 맑은 호수 위 보석 같은 물방울, 수면에서 춤추는 물고기 떼의 율동, 훈훈하게 불어오는 미풍…. 그날 내가 그린 것은 크고 작은 원, 구불거리는 선, 여러 도형이 다양한 색채로 뒤섞여 있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림이었다. 음악이 불러온 내면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추상화였던 셈이다. 추상화란 눈앞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는다. 보이는 것의 재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느낌을 각자의 감각으로 표현한다.

현실세계 은유한 칸딘스키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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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무제’.

드뷔시를 들으며 내가 그렸던 그날의 그림과 무척 닮은(나만의 생각이겠지만) 아주 유명한 그림이 있다.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의 ‘무제’(Sans Titre. 1923)다. 얼핏 보면 어린아이가 제멋대로 그린 낙서처럼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점과 면, 직선과 곡선, 다양한 도형이 마치 오선지 위의 음표처럼 한데 어울려 신나게 연주하는 활력 넘치는 그림이다.

칸딘스키는 어느 날 우연히 거꾸로 걸린 자신의 그림을 보면서 ‘순수한 추상’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거꾸로 된 그림 속의 비현실적인 형태와 색상이 예술적 의미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이후 그는 단순한 색과 선, 형태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추상화에 집중했다. 그의 대표작인 ‘콤포지션 7’ ‘즉흥 14’ ‘가을’ ‘검은 선들’ 등은 대상의 구체적 재현에서 벗어나 감성의 영역으로서의 예술을 표현한다. 그는 음악가처럼 말했다. “위로 솟는 선은 빠르고 경쾌한 리듬, 부드럽고 완만한 선은 느리고 조용한 리듬, 색조는 음색, 색상은 가락, 채도는 음의 크기다”라고.

그의 작품은 현실 세계에 바탕을 둔다.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으로부터 음악적 은유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독창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적 대상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작품 ‘무제’에서 자유롭고 활발하게 상상의 캔버스를 떠돌던 점과 선과 면이 ‘원 속의 원’(Circles in a Circle, 1923)에서는 엄격하게 조직되면서 테두리를 갖추려는 시도를 한다. 세상이라는 커다란 틀 속에 존재하는 마을과 도시, 건물, 사람들을 은유하는 듯하다. 이 작품이 그리는 것은 칸딘스키가 보는 ‘인간들이 사는 세상’일지 모른다. 여러 개의 원은 인간이 만든 사회와 문명, 제도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인간이란 테두리 안에 갇힌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개인을 한정 짓는 공간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걸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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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아셈 타 워 건너편에 있는 ‘아이파크타워’ 건물 정면.

건축가 리베스킨트가 바라본 강남

강남 삼성동 코엑스 건너편에 있는 아이파크타워(2004년 완공)는 칸딘스키의 ‘원 속의 원’을 연상시킨다. 아이파크타워는 고층 빌딩이 즐비한 강남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자아낸다.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디자인한 이 건물의 커튼월(건물의 하중을 지지하고 있지 않으면서 칸막이 구실만 하는 벽체)에는 점, 선, 면의 추상적 요소들이 어우러져 있다. 폴란드 출신의 이 장난꾸러기 유태인은 그의 재기발랄하고 자유분방한 면모를 건물 표면에 추상화처럼 표현했다.

그는 지하 4층, 지상 15층 규모의 이 건물 정면에 칸딘스키 풍의 시니컬한 원을 크게 그리고 그 안에 사람과 길과 사람들의 관계를 배치했다. 도시라는 틀 속에 갇혀있는 점과 선, 그리고 우리 모두는 건물 벽면 안에서 하나의 기호가 된다.

원은 지름 62m의 대형 철골 원형 프레임이다. 은색 막대가 원을 관통하며 건물 북쪽 측면을 뚫고 대각선으로 솟아오른다. 원형 프레임 안에서는 짙은 빨강의 크고 작은 사각형 박스들이 다양한 선과 어울린다. 건축가 리베스킨트는 건물 정면의 이 장식을 “건물 안의 근무자와 건물 밖의 행인이 서로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종의 열린 무대”라고 설명했다.

그는 건축을 통해 자신이 바라본 강남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주변 건물과 비교해 보면 이 건물은 확실히 이 도시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하다. 건축가는 도시에 사는 우리는 테두리 안에 갇힌 존재라는 것,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제도의 경계가 우리를 한정 짓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나는 그가 건물 정면에 담을 메시지를 그리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중학생이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듯 이 도시를 바라보며 떠오른 생각을 스케치하는 건축가의 모습을 말이다. 단단한 프레임 속에 갇혀 있는 이 도시의 삶과 꿈이 건축물 안에서 표현되고, 그 건축물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도시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

아이파크타워는 고층 빌딩 일색인 강남의 중심에서 파격적이지만 재미있는 추상화를 선물한다. 경직된 우리 도시 환경에 자극을 주려던 건축가의 디자인은 1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신선해 보인다. 강남 삼성동 거리 한쪽에 걸린 커다란 그림 한 점. 오랜만에 찬찬히 바라보며 어떤 음악과 어떤 예술가와 어떤 도시의 삶을 생각해본다. 건축은 때때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말하는 그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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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최준석(45)은 건축사사무소 NAAU 대표다. 주택, 어린이집, 기업사옥 등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삼육대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출강 중이다. 『서울건축만담』 『어떤 건축』 등의 건축 에세이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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