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유권자 판단 흐리는 여론조사 정비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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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총선을 1주일 앞두고 새누리당 자체 여론조사에서 원내 과반의석은커녕 135석 안팎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기존 ‘집 전화 여론조사’ 방식에 휴대전화 표본을 섞었더니 수도권에서 여당 후보의 확실 우세지역이 25곳 안팎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심야 긴급 선대위회의를 소집하는 등 호들갑이다.

하지만 정작 어리둥절한 건 유권자다. 어안이 벙벙한 걸 넘어 현기증을 느낀다. 불과 전날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은 수도권 122곳 중 40개 지역에서 우세한 것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총선 상황실을 포함해 언론에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 분석한 수치다. 그러니 고정 지지층의 위기감을 자극해 투표장에 내몰려는 새누리당의 엄살이란 말이 나온다.

새누리당이 선거 전략 차원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들쭉날쭉 활용한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이 판세 분석의 근거가 되는 조사 결과를 구체적으로 내놓지 않은 건 사실이다. 가뜩이나 동일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조사기관별로 상반되거나 지지율이 제각각이어서 혀를 차게 만드는 게 한국의 여론조사 시장이다. 100개가 넘게 난립한 조사 회사들이 응답률 2%가 되지 않는 자동응답기 조사를 마구잡이로 쏟아낸다. 표본과 응답률도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선관위는 이번 총선에서 왜곡이 의심되는 7개 여론조사기관, 53개 조사를 적발해 처벌했다. 전문가들조차 여론조사 결과를 믿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지경이다.

문제는 이런 엉터리 여론조사 결과가 유권자의 표심을 출렁이게 하고 선거 판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선거 여론조사는 정치 현장에서 의사 결정과 건전한 여론 형성에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조사의 공정성과 투명성, 신뢰성이 생명이다. 조사 과정과 결과는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그러려면 문항 내용과 표본 채취를 공개하고 안심번호를 활용해 신뢰성을 검증받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 총선을 계기로 선거 여론조사와 관련된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