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가습기 살균제' 늑장 수사, 의혹만큼은 제대로 밝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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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제조업체 조사 단계로 들어섰다. 4년을 끌어온 수사가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관건은 사망과 살균제 사이의 인과관계를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자료를 찾아낼 수 있느냐다.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사건 특별수사팀은 다음주부터 제조업체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사의 초점은 업체들이 살균제 첨가 물질이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살균제를 계속 제조·판매했는지와 제품 안전성 검사를 제대로 했는지에 맞춰지고 있다. 앞서 지난 1월 출범한 특별수사팀은 제조·유통업체 압수수색에 이어 피해자와 유족 등 200여 명에 대한 전수조사, 유해성 분석 등을 진행해 왔다. 수사팀은 특히 제조사 의뢰로 수행된 대학 연구팀 실험 보고서가 조작돼 검찰에 제출됐다는 의혹에 대해 집중 조사하고 있다. 현재로선 정황에 불과하지만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옥시 측 주장은 힘을 잃게 될 공산이 크다.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숨진 사람은 임산부와 영·유아 등 143명에 이르는 것으로 공식 집계돼 있다. 그제 환경보건시민센터 발표에 따르면 정부의 1, 2차 조사를 받았던 이들 가운데 3명이 추가 사망했다고 한다. ‘인체에 안전하다’는 안내 문구만 믿고 살균제를 썼던 유족들은 “가족의 건강을 위해 사용했던 것인데…”라며 통한의 눈물을 삼키고 있다. 그럼에도 제조사 측은 “제품엔 문제가 없다”며 사과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2012년 피해자들의 고소장 제출 후 검찰과 경찰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다가 이제야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 중이란 사실이다. 그동안 피해자와 가족들의 원통함은 병원과 거리를 떠돌아야 했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란 말이 공연히 있는 게 아니다. 검찰은 과학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지금까지 제기된 모든 의혹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수사기관은 가장 중요한 존립 근거를 잃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