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만세…"방통대서 따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재학생 15만명의 국내최대 매머드대학인 한국방송통신대학(학장 권순찬)이 오는 23일의 졸업식에서 개교 13년만에 처음으로 학사 7천9백60여명을 배출한다.
평생교육기관으로 72년 문을연 이대학은 당초 2년제 초급대학 과정이었으나 82년부터 5년제 학사과정으로 개편돼 이때 3학년으로 편입했던 학생들이 첫 학사졸업을 하는 것이다.
이번 졸업생 중 16명이 서울대대학원에, 24명이 연세대대학원에, 36명이 고려대대학원에 각각 합격하는 등 전국 48개 대학의 대학원에 7백20명이나 진학해 역경을 이긴 드높은 향학열을 과시했다.

<3부자 학생>
초등교육과를 졸업하는 김세중씨(56·서울역촌국교 교사)는 이번 봄에 장남·차남과 함께 3부자가 나란히 대학을 마치고 학사모를 쓰는 경사를 맞았다.
김씨는 방송통신대학과 인연을 맺은 지 13년만에 감격스런 학사학위증을 받게 됐고 장남선일군(27)과 차남 선구군(24)은 2월말에 각각 인하대기계공학과와 한양대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것.
『평생 자기계발을 계속해야한다는 신념에 따라 뒤늦게 학업에 뛰어들었던 만큼 졸업을 해도 책과 벗하는 자세는 흐트러뜨리지 않겠습니다.』
3부자의 동시 졸업은 김씨가 교직에 몸을 담은 지 33년만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김씨에게는 더욱 뜻이 깊다.
지난해에는 막내 선우군(21·한양대 독문과)을 비롯, 4부자가 모두 대학생이어서 김씨의 부인 이윤복씨(50)는 뒷바라지 끝에 한때 몸져누울 정도로 이번경사는 온가족의 합작품이었다.
6년제였던 충남서산중학교를 나온 뒤 국교교사로 교단에 섰던 김씨는 지난 72년 방송통신대가 신설되자「교직자인 만큼 새로운 학문의 습득은 의무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에 1회 입학생이 됐다. 『자녀교육을 위해서는 나 자신이 밤늦게까지 책을 잡고있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했지요.』
선일군은 한국전력에 입사했고 아버지의 수학교사이기도 했던 선구군은 대학원 입시준비중.
돈암2동에 있는 김씨의 자그마한 한옥에는 그 흔한 컬러TV 한대조차 없었지만 김씨 가족들은 3장의 학위증서가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교사부부 학사|부부가 데이트하는 셈치고 도서관 다녀>
『목소리로만 접했던 여러 교수님들께 사은의 큰절을 올립니다.』
방송통신대학에서 만나 백년가약을 맺고 나란히 행정학과를 졸업하게 되는 채대병(29·서울삼광국교 교사)·서경미(25·서울영림국교 교사)씨 부부는 졸업에 누구보다 벅찬 감회에 들떴다.
이들 부부가 만난 것은 지난 두사람 모두 교사였기 때문에 통신대학 입학후 2월초 서울동숭동 방송통신대학 앞 서점에서였다.
대화를 나누고 보니 채씨는 서씨의 서울교대(2년제)4년 선배여서 두 사람은 쉽게 가까워졌다.
채씨는 행정학과, 서씨는 초등교육학과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인 82년에 5년제 학사과정이 생기자 서씨가 행정학과 3학년으로 편입했다.
두 사람 모두 교사였기 때문에 통신대학입학 후 이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도서관을 함께 찾아 교재와 씨름하는 것으로 데이트를 대신해야했다.
지난해 2월 두 사람은 결혼했다. 서씨가 임신을 하면서 학업이 벽에 부딪쳤다.
채씨는 피곤해하는 부인 서씨를 새벽녘에 깨워 공부를 독촉했고 시험 때는 예상문제와 답을 만들어 시험준비를 도왔다. 부인 서씨의 말대로 내조 아닌 외조(외조)였다.

<할아버지 학사|"국교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뒤 얻어 값지다">
『공부에 나이가 무슨 문제야. 평생 책을 손에서 안 놓는 것이 훈장의 길이고 인생 아닌가.』환갑 넘은 나이에 학사모를 쓴다는 게 쑥스럽기는 해….』
65세의 나이로 23일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는 만학도 나영부씨(광주시각화동 183의16).
전남 나주군 문평면 남국민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2월말 정년 퇴임한 나옹은『이제 대학을 졸업하게됐으니 내년에는 전남대나 조선대 석사과정에 입학할 계획』이라고 기염이다.
『큰 자식놈이 공부를 안 하려고 해서 자극도 줄 겸, 못 다한 공부도 할 겸』해서 때아닌 (?)대학공부를 시작했다는 나씨는 72년 방송통신대2년제 초급과정에 입학, 74년 졸업했다. 82년 방송통신대가 학사과정으로 승격되자 3학년으로 편입했다.
수학과정 중 영어원서강독·수학·자연과학과목이 어려워 자녀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는 나옹은 그러나『강의시간에 학생들과 교수들이 교장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괴롭고 어색했다』고.
38년 관립 전주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 신안군자은국교를 시발로 교육계에 투신한 나옹은 전남도 내 l7개 국교에서 47년 동안 교편을 잡아 자신이 직접 가르친 제자만도 2천여명.
부인 이옥희씨(59)와의 사이에 6남1녀를 두어 4자녀를 대학졸업 시키고 막내만 아직 중학에 다니는 학부형이기도한 나옹은 요즘 하루2시간씩 무등산 등산을 하는 외에는 3평짜리 서재에서 고서를 읽는 일로 소일한다.<김일·박근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