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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4만의 광산도시서 인류 미래 살리는 기술 개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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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호 14면

드레스덴공대의 프란츠 피체크 교수가 개발 중인 5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대학에 내놓은 첨단기술은 기업과 창업지망생에게 확산돼 지역 경제를 살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영화 한 편을 1초 안팎에 다운로드 받게 해주고 홀로그램이나 신호등 없는 교차로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사진 DAAD/Robert Lohse]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26년이 지난 지금, 옛 동독 지역은 과학기술 ‘연구와 혁신(R&I)’의 중심지로 변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드레스덴공대, 프라이베르크공대를 비롯한 동독의 공과대학들은 지역 경제발전을 위한 핵심 역할을 한다. 이들 대학은 헬름홀츠 협회, 프라운호퍼 협회 등 유명 연구단체의 지역 연구소와 손잡고 지역 기업이 필요로 하는 첨단기술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다양한 산학연 연구를 주도하면서 동독 지역의 과학·기술·경제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대학을 중심으로 산학연에서 R&I를 통해 개발한 기술들은 지역 기업에 스핀오프(기술 이전·파생·파급)돼 산업에 활력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젊은이들의 스타트업(창업)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대학이 진화해 지역 경제 살리기의 핵심을 맡고 있는 동독의 현장을 살펴본다.


지난달 10일 독일 동부 드레스덴공대의 ‘독일 5G 연구실’. 연구실장인 프란츠 피체크 도이체텔레콤 통신네트워크 석좌교수는 5G(5세대) 이동통신 기술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최대 전송속도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4G의 20배인 20Gbps(초당 20기가바이트)에 이르는 차세대 기술이다. 800MB 용량의 영화 1편을 내려받는 데 현재 상용화된 LTE 기술로는 1분25초쯤 걸리지만 5G로는 1초 이내에 가능하다.


피체크 교수는 “5G는 다운로드 속도만 획기적으로 빠른 게 아니라 4G에선 10ms(밀리초=1000분의 1초) 수준인 전송 지연 시간을 1ms 수준으로 단축함으로써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실시간 응용 기능을 다양하게 상용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로 자동차가 주변 차량의 이동정보를 1ms 오차 정도의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으면 자동차가 교차로를 신호등 기다림 없이 고속으로 통과하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그의 5G 실험실에선 소형 전기차들이 8자형 도로를 멈추지 않고 계속 교차 통과하는 실험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5G기술을 바탕으로 ‘신호등이 필요 없는 인공지능형 교차로’ 시대를 열어보겠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고 2020년께 5G가 상용화되면 엄청난 전송속도와 실시간 중계 능력을 바탕으로 홀로그램·사물인터넷(IoT)·입체영상 등 그간 상상의 영역이었던 21세기형 기술의 구현도 가능해질 수 있다.


피체크 교수는 “5G 실험실은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 신기술을 개발하는 현장”이라며 “여기서 개발할 기술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수많은 스핀오프와 스타트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도이체텔레콤은 물론 보다폰·노키아 등 유럽 통신업체와 자동차 부품업체인 보쉬, 독일 철도공사인 도이체반(DB)까지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스핀오프를 노린 연구투자다.


지난달 11일 독일 작센주에 있는 프라이베르크 공과대학. 이 대학 구내에 있는 헬름홀츠 프라이베르크 연구소의 자원기술실장인 마르쿠스 로이터 박사는 “지금 세계는 자원부족으로 새로운 ‘순환경제 4.0’ 시대를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 광산학과 출신으로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다니며 천연자원 개발 일을 해왔던 그는 “이제는 천연자원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도 인간이 원하는 기능을 할 수 있는 각종 기기를 개발하면서 지속 가능한 생산·소비 시스템 구축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에 공학기술을 결합해 자원 사용을 대폭 줄이는 것은 물론 자원 재활용 시스템까지 함께 마련하는 것이 ‘순환경제 4.0’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LED 조명기기를 개발하면서 에너지는 물론 리사이클 효율까지 높이도록 제품 설계·디자인을 연구하는 식이다. 과거 광산공학으로 불렸던 자원공학이 새로운 상황을 맞아 완전히 새로운 친환경 엔지니어링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켐니츠공대 초경량재료 클러스트(MERGE)에서 한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복합재료 자동차 범퍼를 공개하고 있다. 금속·섬유·화공 등 6개 분야 엔지니어들이 공동 개발했다. [사진 DAAD·켐니츠공대]

옛 동독 지역의 인구 4만 광산 도시에 있는 작은 대학에서 인류의 미래를 살리는 새로운 공학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프라이베르크 공과대학의 브로더 메르켈 전략개발 담당 부총장은 “연방정부와 작센주가 지원해준 연구비를 기존 학과와 학문의 유지가 아닌 새롭고 혁신적인 분야 개척에 집중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동독 지역의 연구가 실용기술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결합한 융합학문 연구도 한창이었다. 지난달 8일 튀링겐주 예나에 있는 막스플랑크 인류사 연구소에선 역사학·인류학·언어학·분자생물학의 융합 현장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연구소의 요하네스 크라우스 박사는 “고대 무덤에서 발견된 유골에서 DNA를 추출하고 구성 요소를 연구해 이를 바탕으로 현생 유럽인들이 아시아 스텝 지역에서 옮겨온 이민자들의 후손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소의 파울 헤가티 박사는 언어학을 바탕으로 인류의 이동 경로와 기원을 연구하고 있다. 헤가티 박사는 “한국어도 연구 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동독 지역에선 다양한 학문의 조화로운 발전을 통해 미래 번영을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 통독 26년, 동독 지역은 R&I를 통해 미래를 개척 중이다. 대학이 변하고 혁신을 시도한 덕분이다.


드레스덴·프라이베르크·예나(독일)=채인택?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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