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베트남판 ‘수상한 그녀’의 성공 기쁘고 놀라운 경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말 베트남을 뒤흔든 영화는 ‘내가 니 할매다’(원제 Em Là Bà Nôi Cùa Anh, 판씨네 감독)였다. 한국영화 ‘수상한 그녀’(2014, 황동혁 감독)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매출 485만 달러(약 56억원)를 기록하며 베트남 영화 사상 최고 매출 기록을 세웠다. CJ E&M이 베트남 현지 제작사와 공동으로 투자·제작했고, 6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었다. 연출을 맡은 판씨네(37) 감독은 비평가 출신의 신예고, 주연을 맡은 미우레(26)는 연기보다 가수로 더 알려진 인물. 이 영화로 미우레는 톱스타 반열에 올랐고, 판씨네 감독은 성공적인 신고식을 마쳤다. 3월 24일 한국을 찾은 두 사람을 서울 상암동 CJ E&M 사옥에서 만났다.

기사 이미지

사진-라희찬(STUDIO 706)

‘내가 니 할매다’는 원작 ‘수상한 그녀’와 얼개가 비슷하다. 우연히 스무 살 꽃처녀의 몸으로 돌아가 가수가 된 60대 할머니 이야기다. 가족과 노인 문제를 코미디·멜로 장르에 버무린 것 역시 같. 판씨네 감독은 연출 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2014년 원작 영화를 보며 ‘모정’이란 주제에 크게 감명받았다. 베트남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프로듀서인 친구에게 얘기했는데, 그가 CJ E&M 베트남지사에 취직하면서 이 영화와 인연이 닿았다.” 미우레의 캐스팅도 파격적이었다.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영화라 부담이 컸다. 60~70대 노인의 말투를 써야 하는 것도 그랬고(웃음). 노인 배우의 연기와 유튜브 영상을 보며 따라했다.” 미우레의 말이다.

‘내가 니 할매다’ 판씨네 감독 & 주연 배우 미우레

그렇다면 원작과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감독은 “로맨스보다는 가족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에 중심을 두고 싶었다”고 했다. 원작과 달리 첫 장면에 가족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담은 이유다. “어머니는 나를 비롯한 삼남매를 혼자 키우다시피 했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베트남전에서 전사하며 서른 살에 홀로되셨다. 늘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며 자랐다.” 감독은 주제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원작의 설정을 바꿨다. “원작 주인공 오말순(나문희)은 오드리 헵번을 동경한다. 내게 헵번은 젊음과 아름다움의 이미지다. 그보다 헌신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동경하는 대상은 베트남의 전설적 여배우 탄응아다. 그는 1978년 어린 아들과 함께 있던 중 괴한의 습격으로 숨을 거뒀다. 아들을 지키려다 대신 총에 맞은 것이다.” 이 영화엔 실제 탄응아의 친아들이 출연한다. 극 중 주인공을 젊어지게 만드는 사진사가 바로 그다. 또 베트남의 현실에 따라 바뀐 장면도 흥미롭다. 젊어진 주인공이 수영장에서 놀다 청년들과 싸우는 장면이 그 예. 주인공은 “너희가 신나게 놀 수 있는 것도 어르신들이 전쟁에서 나라를 지켰기 때문”이라 윽박지른다. 감독은 “실제로 베트남 노인들이 매일 하는 말”이라며 “노인들의 정서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내가 니 할매다’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음악이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의 흘러간 국민 가요를 리메이크해 관객 마음을 뒤흔들었다. 삽입된 음악 중 큰 인기를 끈 건 베트남 유명 작곡가 찡꽁손이 쓴 세 곡. 미우레는 “유명한 노래였기 때문에 부담이 컸다. 잘 부르겠다는 욕심은 버리고 마음을 다해 불렀다”고 말했다.

영화 한 편으로 베트남 영화계의 신데렐라가 된 두 사람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내겐 운명 같은 영화다. 비평가 시절 혹평을 많이 쓴 탓에, 주변에선 내 첫 영화가 비판받을 것이라 걱정했다. 다행히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아 놀랍고 기쁘다. 만들고 싶은 영화를 더 쉽게 제작할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좋다.” 감독의 말이다. 옆에서 이 말을 곰곰이 듣던 미우레가 말을 이었다. “나도 안티팬이 많았다(웃음). 몇몇 기자는 날 아주 싫어했는데, 영화 흥행 후 그들과 친해졌다. 가장 행복한 건 관객의 사랑을 듬뿍 받은 것. 이젠 어떤 좋은 작품에 출연할지 심사숙고하고 있다.”

글=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