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과 장학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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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2월중순에 접어들면 컴퓨터 처리된 성적이 각 학과 학년별로 돌아오게 된다. 가을걷이한 낟가리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성적표들에 눈을 준다. 성적 우수자를 하나씩 꼽아간다. 최우수·우수·대여·근로·성신장학금등 사립대 중에서 액수도, 인원도 많은 편이라고 한다.
『선생님, 혹시 장학금 좀 주실 수 있어요?』
큰 눈을 굴리며 손가락을 비비던 모습. 『말야, 나 좀 살려줘. 미안하지만 꼭 1등해줘. 4.5 응! 섭섭해 말고 꼭 그렇게 해줘』못나터진 지도교수의 말은 고작 이거다. 4.5면 최우수학점이니 장학금은 문제가 없다. 장학금도 여러가지지만 최우수로 받는 것은 가장 떳떳하고 당당하기 때문이다. 나의 부탁을 잘 들어주어 이렇게 1등 장학금을 받은 학생도 몇이나 된다. 받아서 기쁘고 주면서도 신통하다.
입 한번 뻥끗 않는 얌전이도 껑충 뛰어올랐고, 늘 점잖은 무던이도 진보상 감인데. 학기말에 받아 둔 장학금 신청서가 제법 많다. 어느 한장 매몰차게 양보하라고 자를 수 없는 사연들이다. 철들이드는지 부모님 걱정도 제법들하고 있다. 한창 때라 그런지 한마디 사정도 않고 꽁꽁 앓고만마는 축들도 있다.. 전화로, 편지로, 더러는 와서 이야기하는 수도 있지만.
『선생님,저도 어려워요.꼭 받아야돼요.』
『저도 어렵지만 아무개에게 양보하겠어요. 그 애보단 제가 좀 나아요.』
『선생님, 아무개 어떻게 됐어요? 그 애가 정말 어려워요,도와주세요.』
정작 자기의 어려움은 말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를 위해 말을 거드는 구슬같은 마음이 내 코허리를 시큰케 한다.
『전, 지난 번에 장기융자롤 받았거든요. 이번엔 단기융자도 제 차례는 못올텐데요. 최선은 다해보겠읍니다만, 잘 안되면 한학기 쉬어야 할 것 같아요.』
과외과열의 여파로 대학생의 부업길이 막힌 이래 은행야간수위, 지하철 공사장의 잡역부,아채나 생선장수로 뛰는 남학생, 다방·음식점의 심부름을 해 가며 방학동안 학원특강에 나가는 여대생도 있다고 한다. 원고정리·번역·교정·장부정리 등으로 이들을 횹수, 이용할 길은 없는지? 대학의 의무교육이 실시될 날은 언제일지? 대학원부터는 전원기숙사에 넣고, 오로지 학업에만 전념케 하는 제도도 부럽기 짝이 없다.
학업이 취업을 위한 공리적인 수단만은 아니다. 악조건을 뚫고 기어이 배움의 길에 매진하려는 앞길이 촉망되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줄 제도적인 장치는 없을는지?
사정을 듣고도 못도와준, 그리고 이야기조차 않는,그러나 딱한 학생들 생각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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