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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론 거수기 그만···상임위 중심 국회 운영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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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분들도 국회에서 4년만 지내면 다 죄인이 됩니다. 이렇게 정치 혐오가 심해지면 나라의 앞날이 암담합니다.”

소선거구제 지역정당들 타협 몰라
중대선거구제, 비례 확대 고민해야

지난 2일 밤 국회 본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유인태 의원이 발언대에 섰다. 앞서 더민주 공천관리위원회의 ‘컷오프’ 대상에 오르면서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삶의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 설 것 같다”며 운을 뗐다. 유 의원의 소신 발언이 끝나자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국회는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 국회의원 중 석·박사 학위 소지자는 17대 국회 118명, 18대 136명, 19대 156명으로 늘었다. 법조인·의사 등 전문직 출신도 많아졌다. 이처럼 뛰어난 개인들이 모여 있지만 국회에 대한 만족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중앙일보와 경희대 공동조사 결과 국회의원에 대한 만족도는 20.4점(100점 만점)으로 낙제 수준이다. 이에 대해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매력정치의 최대 걸림돌로 정치 제도와 문화를 지목했다.

유 의원은 오래전부터 지역주의에 기반한 갈등이 우리 정치의 문제점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는 “민주주의 원칙상 타협을 해야만 하는 곳이 국회인데, 거대 정당들이 지역에만 기댄 채 소선거구제라는 든든한 울타리에 안주하고 있는 한 타협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며 “선거 때만 되면 정략적으로 연대하는 것도 소선거구제에서 이기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소선거구제가 강고한 지역 정당과 묶이면서 타협의 정치는 실종되고 강대강의 대결만 남게 됐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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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양대 지역 정당이 정치를 좌지우지할 경우 정당이 더 이상 국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박상병(정치평론가) 인하대 초빙교수는 “양당 체제에서는 상대를 향해 막말을 할수록 지지율이 높아지기 마련”이라며 “공존과 협치의 정치가 어려운 현 상황을 깨려면 제3, 제4의 정당이 나올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비례대표 확대 방안 등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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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론을 따르지 않으면 ‘배반자’로 찍히는 풍토 또한 문제다. 김홍신(소설가) 전 의원은 “한국의 국회의원은 200여 개의 특권을 갖고 있는데 감사는 전혀 받지 않는 ‘세계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나도 한나라당 의원일 때 주요 당론에 반대 의견을 냈다가 ‘상습적 당론 거부자’로 낙인이 찍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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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도 매력정치의 핵심 요소인 전문성과 소신, 활발한 입법활동 등을 저해하는 주된 요소로 중앙당 중심의 당론 통제를 꼽고 있다. 정진영(정치학) 경희대 부총장은 “당론만 따라 ‘거수기’처럼 행동하면 되니 정책 전문가가 될 필요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이로 인해 입법 갈등은 출구를 찾기 힘들어진다”며 “중앙당이 아닌 상임위 중심으로 국회를 운영하는 등의 대안을 모색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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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과거 YS·DJ 시절에는 민주화 투쟁을 하려다 보니 하향식 리더십이 효율적일 수 있었다”며 “하지만 요즘 같은 탈권위 시대는 협치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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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의 공천 제도에선 소신과 전문성을 갖춘 정치 신인들이 후보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며 “공천 방식도 보다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천인성·윤석만·남윤서·노진호·백민경 기자, 자료 조사=김다혜(고려대 영문학과4) guchi@joongang.co.kr
◆경희대 연구팀=정진영(부총장)·정종필(미래문명원장)·윤성이(정치외교학)·이문재(후마니타스칼리지)·이택광(문화평론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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