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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적립금 수익률 고작 2.2%…7대 사회보험 대수술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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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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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부산시 해운대구에 있는 IoT(사물인터넷) 글로벌 스마트시티 실증지원센터를 방문했다. 유 부총리는 관계 기관 및 업체와의 간담회에서 “규제 프리존 특별법은 지역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고 지역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민생 법안”이라고 말했다. [사진 기획재정부]

일을 하다가 다쳤거나 일자리를 잃었을 때를 대비한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적립금은 합쳐 20조1000억원이다. 20조원 넘는 돈을 전담해서 운용하는 인원은 산재·고용보험 통틀어 5명이다. 전문성도, 인력도 부족하다 보니 민간 위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물가상승률 따라잡기도 버거워
건보 경우 9년 뒤면 적립금 고갈

수익률은 바닥이다. 20조원 적립금을 굴려 지난해 2%대 수익률을 올리는 데 그쳤다. 17조원 규모의 건강보험 적립금 운용 수익률도 지난해 2.2%였다. 물가상승률을 따라잡기도 버거운 수준이다. 운용 여건이 나은 국민연금·공무원연금 정도가 3~4%대 수익률을 기록했을 뿐이다.

지금이야 수십·수백 조원대 기금이 쌓여 있지만 그마저도 곧 바닥이 난다. 기획재정부 전망에 따르면 건강보험 적립금은 2025년, 사학연금은 2042년에 고갈된다. 국민연금도 2044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2060년이면 바닥난다. 저출산으로 돈을 낼 사람은 주는데 고령화로 받을 사람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금리(수익률) 하락 추세가 이어진다면 적립금 고갈 시기는 더 당겨질 수 있다.

정부가 575조원 규모의 7대 사회기금·보험 재정을 수술대에 올린 이유다. 29일 송언석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 1차 회의를 열어 “사회보험의 재정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강도 높은 재정건전화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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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추는 진단이다. 정부는 사회기금·보험별로 제각각이었던 재정 추계 주기와 방식을 통일한다. 안도걸 기재부 복지예산심의관은 “재정 추계 시기와 방식을 통일해야만 중장기적 지속 가능성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2018년 예정)에 맞춰 다른 연금·보험의 재정 전망 수치를 함께 산출하기로 했다. 공무원·군인·사학연금 재정 추계는 원래 2020년 낼 예정이었다. 정부는 또 4개 연기금 똑같이 중기(10년)·장기(70년) 전망치를 낸다. 3대 보험도 10년 단위로 중장기 재정 추계를 한다.

정부가 종합 진단을 시작한다는 건 처방을 내려 수술에 들어가겠다는 의미다. 이날 정부는 ‘어디(7대 연금·보험)’를 손볼지는 알렸지만 ‘어떻게’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7대 연금·보험의 투자 공조 방안을 마련하고 업무 용도 외의 부동산, 비핵심 부대 사업을 정리하는 방안을 내놓긴 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안도걸 심의관은 “추계 결과를 반영해 사회보험별 재정 안정화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원칙론만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쓸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금리(수익률)는 점점 낮아지고 고령화에 돈을 낼 사람보다 받아 갈 사람이 더 빨리 늘어나는 흐름은 이미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금·보험의 성격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국외·대체 투자 비중을 늘려 수익률을 높이고 ▶납부액은 늘리고 ▶수령액은 줄이는 쪽으로 방향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지난 28일 “사회보험 분야를 ‘저부담-고급여’ 체계에서 ‘적정 부담-적정 급여’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기재부 관계자는 “대안 검토, 부처 협의는 물론 법 개정까지 거쳐야 해 언제 시행하겠다고 못 박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연기금에 대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부처 간 기싸움, 잇따른 총선·대선으로 사회·정치적 합의가 제대로 이뤄질지 장담하기 어렵다.

가장 큰 걸림돌은 ‘더 내고 덜 받는’ 연금·보험 재정 개혁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다. 지금의 ‘용돈 연금’이 ‘푼돈 연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재정이 악화되고 있고 내수 여건도 나빠지고 있다 보니 정부에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며 “수령액이 계속 줄어 연기금의 ‘사회 보장’ ‘보험’으로서 역할과 비중이 감소하는 부작용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정부 중심인 연금·보험 운용 방향에 의문을 표시하는 시각도 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은 “결국 연기금 수익률을 제고하는 차원에서 운용 인력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인센티브(혜택)를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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