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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의 실습장 청계천 전자상가<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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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청계천의 컴퓨터시장이 젊은 두뇌들에 의해 움직여진다면 진공관시대부터 내려온 전자시장은 청계천에서 성장한 「청계천 도사」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 이와 함께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같이 공존하고 있어 청계천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들 상인들은 전국에 전자부품을 공급하는 기능을 하는 한편 「청계천 도사」 들이 만들어 내는 아이디어상품을 판매하고 또 이들이 필요로 하는 각종 특수부품도 공급함으로써 청계천 안에서 모든 것이 자급되는 형태를 갖추게 한다.
청계천 엔지니어들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전자에 관한 한 어떤 제품이든 주문만 하면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영역은 70년대 중반부터 전자산업의 발전에 따라 음향기기 제작이 업체로 넘어가고 또 최근에 와서는 방송용 앰프분야까지 기업들이 참여함으로써 상당한 축소를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상품화되지 않은 전자제품의 주문생산, 각종 유·무선설비의 제작, 특수한 생산설비의 수리·유지 등을 통해 여전히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청계천 엔지니어들이 기업에 의해 주도되어 가는 전자산업의 풍토 속에서도 살아남아 자신들의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학교교육이나 이론으로는 습득할 수 없는 몸으로 배운 독특한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청계천의 도사급 엔지니어는 줄잡아 2백여명. 이들 밑에서 기술을 배우는 수련생까지 합치면 대략 1천5백여명의 엔지니어들이 청계천에서 일하고 있다고 이곳 관계자들은 추산한다.
도사급 1명이 탄생하기까지는 빠르면 5년, 늦으면 10년 정도가 걸린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매년 청계천 기술을 익히기 위해 이곳으로 유입되는 인력은 대략 1백여명선.
이들이 제일 처음 하는 일은 사무실 청소부터 시작된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엔지니어의 양말 빨기는 물론 매까지 맞아가며 이들은 엄격한 도제기간를 거쳐야했다. 전자기술을 갖는다는 것이 귀하게 대접받던 그때까지만 해도 있을 수 있었던 일 들이다.
이렇게 해서 사무실 분위기에 익숙해진 실습생인 속칭 「꼬마」 들은 간단한 조립 및 수리를 선배 엔지니어들의 지도를 받아 해보게 된다. 이런 과정을 3∼4년 거치면 보조기사급으로 성장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특기분야가 대충 결정된다.
이 특기분야는 각종 케이스 제작, 녹음기의 고무벨트에서 특수 집적회로 (IC) 에 이르기까지 수백개 분야에 이른다. 보조기사로서 자기의 전문분야를 갖고 그쪽에서만 몇 년 더 수련을 거치면 하나의 전문급 엔지니어로 인정받게 된다.
충분한 실력을 갖추게 되면 이들은 고된 수련기간을 마무리 짓고 이곳에 독립된 점포를 차려 스스로 자신의 분야를 개척하거나 시골 고향으로 내려가 전파상을 차리기도 한다.
김영권씨 (28· 지구음향사 대표) 는 지난 74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청계천에 「꼬마」로서 몸을 담았다. 자취를 하면서 오디오분야의 기술을 배우기 7년 만인 81년에 그 동안 모아둔 50만원으로 사무실을 얻어 독립했다. 김씨의 전문분야는 방송용 앰프 설계 및 제작. 80년 서울여의도에서 열린 세계복음화대회, 반공궐기대회 등에서 사용된 유선방송시스템을 설계·운영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행사에는 사용된 대형스피커만 2백개, 앰프의 출력이 8천W로 매머드급.
이밖에 83년 초 설악산 명성콘더의 오디오설비를 제작했고 각종 아파트에 설치되는 방송시스팀을 자체 설계·제작해 유수한 전자업체인 I사 등과 경쟁입찰에 우수함을 인정방아 낙찰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청계천도사중의 하나다.
이곳 엔지니어들이 활발한 제작활동을 펼 수 있는 것은 이곳에 모여 있는 2천여 개의 각종 전자관련 점포의 덕이 크다. 이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엔지니어들이 필요로 하는 각종 부품을 수입 또는 국내업체로부터 모아 공급하는 한편 강원도에서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중소전자업체 및 전파 상에 부품 공급을 맡고 있다.
이들은 주로 아는 사람을 통해 이곳에 발을 들여놓거나 이곳 상점의 종업원으로 출발, 고생을 한 후 돈을 모아 독립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의 장사가 쉽지 않은 것은 상점마다 취급하는 품목이 전문화 돼있고 이곳 시장의 유통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 상인이라 해도 준 엔지니어는 돼야 청계천에서 장사를 할 수 있다.
청계천전자시장은 전자분야의 사업을 원하는 사업가의 전초기지요 실습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청계천전자의 전성기를 구가하던70년대 중반까지 C전자의 윤모씨, S전자의 오모씨 등 이곳에서 잔뼈가 굵어 성공해 나가는 등 적지 않은 사업가들을 배출했다.
이곳에서 사업에 성공해 떠나는 상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살려 전자업체를 설립해 사업을 계속하는가하면 중소기업의 높은 실패율을 우려해 부동산 쪽으로 눈을 돌려 전업하기도 했다. 부동산으로 한 밑천 잡아 시내에 대규모 빌딩을 소유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곳 상인들은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이곳을 떠나더라도 자신의 공장을 갖고 자신이 만든 전자부품을 판매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리 나라 전자산업의 발홍지로서, 국내 최대규모의 전자시장으로서 상권을 형성해온 청계천은 시장부지 이전이라는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서울시의 계획은 청계천의 전자관련상가 2천5백 개를 오는 8월부터 88년 초까지 서울 용산 청과시장 자리로 옮기게 되어 있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도매시장이 오는 4월 완공됨에 따라 용산 청과시장이 옮겨지고 이곳을 일본 아끼하바라 (추섭원) 전자상가보다 2배나 큰 동양 최대규모의 전자·전기상가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이전을 앞두고 이곳 상인 및 엔지니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모든 점포의 일시 이전이 아닌 단계별 이전으로 청계천전자시장 특유의 기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곳 범 전자상우회 김학문 회장 (54), 아세아전자상가 상우회 양호석 회장(43)등은 『청계천 전자시장의 특성은 케이스에서부터 특수한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이곳에서 자급되고있다는 점이다. 단계적 이전은 점포를 이곳과 용산으로 분할하게돼 청계천의 특성과 기능을 상실케 할 것』이라며 『모든 점포의 일시이전이 정부가 계획하는 한국의 아끼하바라를 형성하는데도 바람직하다』 고 건의했다.
용산으로의 이전을 계기로 청계천전자상권은 그 동안 위축된 시장기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전기를 마련해야할 것이다. 진공관시절부터 내려온 보수적인 분위기를 벗어나 공동체로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적인 사업활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상인들은 이곳에서 개발되는 제품을 기업체에서 도용해 가기 전에 특허신청 등을 통해 자가 방어를 하고 엔지니어들은 유아독존적인 자세에서 탈피, 자유로운 정보교환 및 기술합작을 통해 보다나은 기술개발을 꾀해야 할 것이다. <김상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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