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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원 진공터널, 1조 4445억원 가속기…책상서 물리학 연구시대 끝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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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중력을 발견했고 미적분학을 발전시킨 아이작 뉴턴의 실험실은 단출했다. 유리 프리즘과 나무로 만든 망원경이 실험장비의 전부였다. 아인슈타인은 실험실이 없었다. 그는 종이와 펜, 그리고 머릿속에서 이뤄진 ‘사고 실험’으로 상대성이론을 만들었다.

요즘 물리학의 풍경은 이와 정반대다. 대규모 관측장비와 자본이 학문 경쟁력의 바탕이다. 지난 2월 중력파를 찾아낸 미국의 라이고(LIGO·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천문대)가 대표적이다. 미 루이지애나주 리빙스턴에 위치한 라이고는 길이 4㎞의 진공터널이다. 미국은 여기에 1조원을 투자했다. 원자 크기보다 작은 미세한 길이 변화를 감지하도록 설계된 라이고는 세계 최초의 중력파 발견이란 결과물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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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실험 수조인 가미오칸데 내부. 고무보트에 탄 연구원들이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도쿄대]

2002년과 2015년 일본에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준 건 다름아닌 폐광산 지하에 설치된 대규모 실험 수조 가미오칸데였다. 일본 물리학자 마사토시 고시바(중성미자 최초 발견)와 다카키 가지타(중성미자 질량 최초 측정)는 가미오칸데에서 진행한 연구결과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직경 50㎝ 크기의 초고감도 빛 탐지기 1만1000개가 빽빽이 박혀 있는 가미오칸데엔 4000억원이 투입됐다. 정현식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는 “종이와 연필로만 물리학을 연구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대규모 정밀 측정 장비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폐광산을 물리 실험실로 재활용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지하실험연구단은 양수발전소 시설 일부를 빌려 쓰는 세입자 에서 벗어나 독자 실험실로 쓸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단일 과학 장비로선 역대 최대 규모 예산(1조4445억원)이 투입되는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건설도 조만간 공사가 시작된다. 대전시 신동지구에 2021년 완공되는 중이온가속기는 양성자부터 우라늄까지 다양한 입자를 빛의 속도 가까이 가속할 수 있는 설비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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