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주인인가…"를 보여주자|한운상 <서울대교수·사회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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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2대 총선이 눈앞에 다가오게 되니 여기 저기서 선거에 대해 나름대로 여러 사람들이 논평을 하고 있다. 나라고해서 다가오는 선거에 대해서 할말이 없겠는가. 물론 신나게 말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하나 내킨 김에 두 가지만 얘기해야겠다.
선거란 원래 주권을 가진 주인인 국민들이 권력엘리트에 대해 시만을 내리고 징벌을 가하는 주기적인 정치행사다. 결코 어떤 요식행위가 아니라 일종의 국민징벌권의 행사다.
물론 이 심판과 징벌의 대상은 정치가와 정당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국민의 심판과 징벌의 1차적 대상은 집권당이다. 집권당의 계획에 따라 지난 4년간 각종 정책이 펼쳐졌고, 그 정책에 의해 국민의 삶이 이렇게 저렇게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다. 오늘날처럼 정책은 넘치고 있되 정치가 없는 상황에서 정말 징벌대상이 정당이 될 수 있겠는가?
정치영역은 축소되어버린 반면 행정영역은 거침없이 확대되어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한다면, 주기적으로 국민이 마땅히 심판을 내리고 징벌을 가해야할 과녁은 정당이 아니라 행정부가 되어야할 것이다.
국회와 정당이 상대적으로 왜소화된 터에, 그리고 그것들이 정부권력의 핵으로부터 밀려난 변두리 세력이 된 터에, 국민이 이 같은 주변부 세력을 놓고 심판한다는 것이 얼마간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오히려 권력을 쥐틀고 정책을 집행하는 중심부분이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정책을 집행하는 중심부가 선거심판에서 면제된다는 것은 참다운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주제도란 국민이 주인노릇 하는 제도다. 주인노릇 한다함은 주인이 심부름시키는 사람을 적절하게 부리고 심판할 수 있다함과 같다.
그런데 말로는 민주주의니 민주주의토착화니 떠들어대면서도 정말 주인이 되어야할 국민이 손님이나 종의 처지로 떨어지게 되고, 종이 주인을 오히려 호령하게 된다면 이것은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정치는 비록 그것이 얼마간 고약한 냄새를 피운다하더라도 반드시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의 활성화는 언로의 열림이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기에 언론의 자유가 모든 민주적 정치 활동의 기초로서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 정치활동이 물고기라면 언론의 자유는 물이다. 물 없는 곳에 물고기라는 정치는 살아남을 수 없는 법이다.
이런 뜻에서 이번 선거는 비록 그 의미가 제한되었다 하더라도 앞으로 정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크게 공헌해야 할 것이다. 누가 과거에 정치부재를 직접 간접으로 재촉했는가를 면밀히 가려 정치부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치를 위축시키는 일에 도움 준 당의 후보에게는 표 던지는 일을 삼가야할 것이다. 여기에 이번 선거의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의미가 있겠다.
둘째로 전국구제도의 문제점을 지척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구제도는 전국적 국민여론을 무시한 제도다. 지역구의석수의 다수를 차지한 정당이 전국구의원의 3분의2를 차지한다는 데는 문제가 있다.
국회가 국회다울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이 국민의 대표성을 지녀야한다. 국회의 정당성은 바로 이 대표성에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의 마음과 희망과 불안을 정확하게 대변할 때만 참 구실을 하게된다. 그러기에 대표성을 결한 국회는 이미 국회가 아니다. 이점에서 국회는 다른 정부기관과 달라야한다.
물론 터무니없는 가정은 아니지만 이렇게 가정해보자. 서로 막상막하의 실력으로 겨루는 정당이 다섯 개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 전체 유효투표수의 21%를 얻고서도 전국구의원의 67%를 독차지할 수 있게된다.
어떻게 해서 21%의 국민여론이 67%의 지지라는 결과를 산출해낼 수 있는가? 이 같은 추리를 좀더 과장하여, 다당제도하에 10개의 정당이 서로 각축한다면 이론적으로 10·1%지지를 받고도 67%의 지지를 받게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이것은 참으로 불합리한 결과다.
그러기에 집권당의 전국구후보 중에 그 당이 얻은 지지율에 미치지 않는 순위로 전국구의원이 된 분들은 기분이 참으로 어정쩡할 것이다. 정말 민주적 양심이 있는 분이라면 자기의 전국구순위가 국민의 지지범위 밖에 있는 경우 이 사실을 뼈아프게 여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부조리한 제도를 거역함 없이 너무나 온순하게 그것을 받아들여 그 테두리 속에서 얌전히「정치활동」 을 해온 야당들의 몸가짐이다. 이들의 수용이 있었기에 그 같은 비 비례적인 장치가 제도로 굳혀진 것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30여%로 67%를 차지하는 현실을 눈앞에 놓고, 집권당에 표를 던지지 않는 60여%의 다수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모든 정치인들은 깊이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그들이 정치적 무력감과 억울한 정치적 배신감을 느낄 것이고 그만큼 그들의 한도 깊어질 것이다.
백성들의 한이 소리 없이 눈처럼 쌓이게되면 언젠가는 그것이 역사의 진로를 바꾸는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음을 정치인들은 깨달을 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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