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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 파괴보다 더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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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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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뉴디지털실장

삼성전자가 최근 내놓은 조직문화 혁신 방안 중 하나가 수평적 호칭이다. e메일을 보낼 때나 얼굴을 맞대고 얘기할 때 팀장님·부장님 같은 직책·직위로 부르는 대신 상하를 막론하고 모두 이름에 ‘님’자만 붙일 방침이라고 한다.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스타트업 방식의 유연한 조직문화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우니, 윗사람 눈치 보게 만드는 호칭부터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 같은 호칭 파괴는 이미 다른 기업에서 오래전부터 시도돼 왔다. 지위 고하와 무관하게 ‘님’이나 ‘프로’만 붙여 부른 곳이 있었는가 하면 카카오처럼 입사하면 무조건 영어 이름부터 짓게 한 후 모든 소통을 영어 이름으로만 한 곳도 있다.

똑같이 기존 위계를 무너뜨리는 호칭 혁신을 도입했지만 결과는 판이하다. 유연한 조직문화를 갖게 된 곳은 카카오를 제외하면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다시 말해 카카오는 성공했고, 다른 기업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무엇이 그 둘 사이를 갈랐을까.

카카오 전·현직 직원들 얘기를 들어보니, 투명한 내부 의사소통이 가능한 게시판 문화와 수평적 평가 방식을 꼽는다. 보통 사내 게시판이라고 하면 회사의 공지사항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창구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카카오는 조직 구성원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개 게시판을 통해 대부분의 업무를 공유한다. 지금 맡고 있는 업무는 물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개선해야 할 일 등은 게시판을 통해 공유하는 게 원칙이다 보니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가령 막 입사한 신입 직원이라도 게시판만 보면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전부 알 수 있고 어떤 의견도 가감 없이 올릴 수 있으니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조심스러운 건 윗사람이다. 카카오의 한 전직 임원은 “해외 출장 갈 땐 모두 이코노미석을 탄다”며 “임원만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게 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게시판에 올릴 생각을 하니 접었다”고 농반진반으로 얘기하기도 했다.

평가 방식은 더욱 핵심적 요소다. 팀장이 팀원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팀원끼리는 물론 협업한 다른 부서 의견까지 평가에 반영한다. 파트장 등 대외업무용 직급이 있지만 내부에선 팀장이든 팀원이든 본인이 맡은 업무 성과로 다면평가를 받기 때문에 굳이 사내 정치 같은 데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수평적 조직문화에는 단순히 호칭 바꿔 부르기를 넘어서는 시스템이 있었다는 얘기다. 당연하지만 많은 기업이 놓친 부분, 삼성은 잘 챙길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안혜리 뉴디지털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