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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박재홍 "여름이 좋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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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30·기아)의 타격 자세는 야구 교과 박재홍(30.기아)의 타격 자세는 야구 교과서에 나오는 '정석(定石)'과는 거리가 멀다. 공을 때리는 순간 왼쪽 다리가 뒤로 빠져 오픈 스탠스가 되고 방망이 끝도 위로 치켜올리는 듯하다.

그러나 타격 코치는 박재홍에게 타격 폼을 바꾸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프로야구에서 지금까지 단 일곱번밖에 없는 '30-30 클럽(홈런.도루 30개 이상)'을 세차례나 기록한 박재홍은 '잔소리'를 듣지 않을 정도의 위치에 올랐다.

그런 그도 팬들의 야유나 비웃음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1996년 현대 선수로 프로에 데뷔했던 박재홍은 광주구장에서는 물병 세례를 받기도 했다.

'돈'때문에 '고향'을 버렸다는 것이 당시 극성 해태 팬들의 주장이었다. 광주일고-연세대를 졸업한 박재홍은 기아의 전신인 해태에 고교시절인 92년 일찌감치 1차 지명이 됐다.

그러나 해태는 96년 재정난 등을 이유로 현대로부터 투수 최상덕을 받고 박재홍의 지명권을 넘겼다. 이 과정에서 박재홍은 이미 95년 현대의 아마추어 야구팀에 입단, 고향 팬들로부터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다.

올 초 박재홍이 고향팀 기아로 옮긴 뒤에도 팬들의 평가는 좋아지지 않았다. 거포로서 기대에 못미치는 플레이를 했던 탓이 컸다. 홈런 7개, 타점 25점은 4번타자의 기록으로는 부족했다.

기아 홈페이지에는 그를 비난하는 글이 수없이 쌓였다. 평소 타순을 잘 바꾸지 않는 기아 김성한 감독도 4번타자 박재홍을 한때 6번까지 내렸다.

그러나 뜨거워지는 여름의 태양이 '리틀 쿠바' 박재홍을 깨우고 있다. 최근 다섯경기에서 14타수 5안타(타율 0.357)에 홈런 2개, 4타점으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이 기간에 삼진은 2개뿐이었으나 볼넷은 8개나 골라냈다.

박재홍은 지난 2일 마산에서 열린 롯데와의 더블헤더에 약 두달 만에 4번타자로 복귀했다. 되찾은 자존심은 더블헤더 2차전에서 2-1로 앞선 7회초 2사1루에서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쐐기 홈런으로 이어졌다.

박재홍은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 달리기를 많이 했다. 하체의 힘이 되살아나 타구도 힘을 받는다. 팀이 어려운 만큼 팀 승리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열혈 기아팬들이 가장 듣고 싶어했던 말이다.

한편 광주경기(기아-삼성)는 비로 취소됐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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