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연속 챔피언 OK, 시몬 웃으며 안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기사 이미지

우승 트로피를 받아든 뒤 만세를 부르는 김세진 감독(가운데)과 선수들. [안산=뉴시스]

24-23. 마지막 1점을 남긴 순간 OK저축은행 세터 곽명우(25)의 토스는 시몬(29·쿠바)의 머리 위로 향했다. 시몬은 높이 솟구쳐 올라 현대캐피탈 코트에 강스파이크를 꽂았다. V-리그에서 날린 마지막 스파이크. OK저축은행의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OK저축은행 선수들은 모두 코트로 몰려나와 김세진(42) 감독과 시몬을 얼싸안고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현대캐피탈 꺾고 프로배구 제패
연봉 제한 걸려 한국 떠나는 시몬
마지막 경기서 32점 올리며 MVP

OK저축은행이 24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V-리그 챔피언결정전(5전3승제) 4차전에서 현대캐피탈을 세트스코어 3-1(25-20 25-15 19-25 25-23)로 물리쳤다. 챔프전에서 3승1패를 기록한 OK저축은행은 창단 3년 만에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승부처였던 4세트 12점을 포함해 총 32점을 기록한 시몬은 챔프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기사 이미지

챔피언 결정전 최우수선수에 선정된 시몬(오른쪽)이 김세진 감독과 함께 샴페인을 터뜨리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OK저축은행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나는 시몬의 등번호 13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안산=뉴시스]

2014년 OK저축은행에 입단한 시몬은 지난 2년간 V-리그를 평정했다. 지난 시즌 삼성화재의 8연패(連覇)를 저지했고, 올시즌에도 발군의 활약을 펼쳤다. OK저축은행은 올시즌 시즌 5라운드 중반까지 1위를 굳건히 지켰다. 그러나 주전 세터 이민규(24)가 5라운드에서 어깨 부상을 당한 이후 흔들렸다. 후반기 들어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온 현대캐피탈에 정규시즌 1위 자리를 내줬다. 그러나 경험이 풍부한 시몬은 젊은 선수들을 다독이며 ‘코트 안의 리더’ 역할을 했다. 시몬이 중심을 잡자 OK저축은행도 상승세를 탔다. 플레이오프에서 삼성화재를 가볍게 꺾은 OK저축은행은 챔프전에선 전혀 다른 팀이 됐다.

코트 안에서 괴물로 통하지만, 시몬은 코트 밖에서는 천진난만한 소년 같았다. 팬들과 함께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고, 코믹 댄스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년엔 국내 무대에서 시몬을 볼 수 없다.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공개 선발)제도가 도입돼 선수 연봉 상한이 30만 달러(약 3억7000만원)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이 정도 금액으로는 월드클래스 공격수 시몬을 잡기는 어렵다.

OK저축은행은 지난 3일 정규 시즌 최종전 직후 시몬을 위해 송별회를 준비했다. 시몬은 동료들의 이별의 말이 담긴 영상을 보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팬들도 함께 눈물을 글썽이며 아쉬워했다. 그래선지 우승을 확정하고도 시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시몬은 “슬픔과 기쁨이 교차한다. 형제 같은 선수들을 두고 떠나는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김세진 감독은 “어려울 때 시몬이 해결해 준다고 생각하고 강서브로 밀어 붙인 게 통했다”며 “시스템을 잘 갖춘 현대캐피탈을 보면서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현대캐피탈은 빠르고 다양한 공격 루트로 무장한 ‘스피드 배구’로 이번 시즌 V-리그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정규 시즌 1위에 오르고도 챔프전에서 고배를 마신 최태웅(40) 감독은 “OK저축은행은 삼성화재 초창기 같은 느낌이 든다. 5연패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실력으로 진 게 맞다 ”고 말했다. 김세진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20년 지기’ 최태웅 감독과 포옹하며 챔프전을 마무리했다.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시상식에 끝까지 남아 OK저축은행의 우승을 축하했다.

안산=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