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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결국 막장 ‘옥새 파동’까지 간 집권당 내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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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이 친박계와 비박계의 내전 상태로 치닫고 있다. 어제 비박계 김무성 대표가 ‘최종 논란 5곳’을 무(無)공천 지역으로 선언한 것이다. 친박계가 다수인 공천관리위는 5곳에서 비박계 유승민·이재오·류성걸 의원 등을 탈락시키고 친박계 후보들을 공천한 바 있다. 김 대표는 당 대표의 직인 날인을 거부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이른바 ‘옥새 투쟁’을 벌인 것이다. 대표 직인이 없으면 친박계 후보들의 출마가 불가능하므로 유·이·류 의원 등 탈당·무소속 출마자의 당선 가능성은 커진다.

최고위원회 다수를 점하고 있는 친박계는 김 대표의 행동을 무책임한 당무 거부로 규정했다. 그리고 김 대표가 계속 거부할 경우 당헌·당규에 따라 최고위 의결 절차를 진행할 뜻을 천명했다. ‘김 대표 유고(有故)’를 선언하고 새로운 직인으로 공천자의 후보 등록을 강행할 의사를 비친 것이다. 만약 일이 이렇게 진행되면 적법성을 둘러싸고 법정 다툼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집권당의 공천과 내분이 법정으로 비화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의 공천 파행으로 보면 새누리당의 막판 ‘옥새 파동’은 예정된 파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한구 공관위원장을 앞세운 친박계는 당의 정체성 확립과 임기 후반부 국정 중심세력 확보라는 명분을 내세워 친유승민계와 친이명박계를 대거 탈락시켰다. 공관위가 적잖은 지역에서 친박계 후보를 단수 추천하는 바람에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춘 반대파 후보들은 경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김 대표가 문제 삼은 5곳이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여론조사 결과 우월한 것으로 나타난 후보들이 오히려 탈락했으며 이는 당헌·당규를 위반한 독선적인 공천이라고 주장한다. 유승민 의원의 경우 이한구 위원장의 공관위는 공천심사를 막판까지 미룸으로써 자진 탈당을 유도하는 꼼수·편법을 구사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 같은 공천 파행의 궤적으로 볼 때 김 대표의 옥새 투쟁은 나름대로 명분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김 대표도 “잘못된 공천을 바로잡아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최선의 길이라 생각했다”며 불가피한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당의 지도자로서 김 대표의 처신에도 문제가 많다. 그가 내세우는 ‘불공정 공천’의 잣대로 보면 그는 논란의 5곳에 대해 처음부터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이미 문제 지역의 공천을 놓고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와 공천관리위원회가 일주일 넘게 볼썽사나운 내분을 벌여왔지 않은가. 여론조사에서 앞섰던 주호영·조해진 등 적잖은 비박계 의원과 임태희 전 의원 등 친이명박계 예비후보들이 ‘3·15 공천 파동’ 때 경선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김 대표가 이때부터 과감하게 문제 제기를 했다면 지금과 같은 집권여당의 파국적인 정면충돌은 피했을 것이다.

이번에 김 대표는 설마 하던 최강의 승부수를 던졌다. 청와대와 친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사태는 집권여당의 단순한 공천 파열음이나 힘 겨루기가 아니다. 김 대표가 권력투쟁에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면서 배수의 진을 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내부에선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정면으로 맞서면서 “사실상 심리적 분당 사태”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침묵하던 김 대표가 극단적인 반박(反朴) 투쟁에 나섬으로써 집권당의 총선 대열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반박 정서로 연결된 무소속 출마자들이 다수 당선되거나 여권 분열로 당이 의석을 다수 잃으면 집권당의 과반은 불투명해질 것이다. 이번에 드러난 내홍(內訌)의 심각성으로 보면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총선 후 새 지도부 구성과 이어지는 대선 경쟁에서 내분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안보 불안이 커지는 이때에 집권세력이 국가와 국정에 커다란 부담으로 등장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의 막장 공천은 해도 너무 하다. 국민들은 후보 등록 마지막 날까지 지속되는 여당의 공천 싸움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 처음부터 ‘배신자’ ‘정치 보복’ ‘탈당’ ‘무공천’ 같은 극단적 표현들이 난무하더니 결국 당 대표가 청와대를 향해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초유의 사태로 번졌다. 난생처음 목도하는 막장 드라마의 끝이다. 어떻게 여당 대표가 총선 후보 등록 마감일에 도장을 갖고 낙향해 영도 다리를 걷고 있는가. 친박 최고위원들은 뒤늦게 “김 대표의 정치 쿠데타”라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처음부터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공천을 했었다면 결코 등장하지 않았을 장면들이다.

이런 괴상망측한 새누리당의 풍경은 결국 오만과 독선에 따른 자업자득이다. 머지않아 거대한 역풍을 맞는 것도 사필귀정일 것이다. 이제 집권 세력은 벌거벗은 몸으로 유권자의 심판에 놓이게 됐다. 새누리당은 야권 분열의 반사이익에 기대 ‘과반 승리’를 장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악의 결과를 피하려면 이제라도 합리적인 방법으로 내분을 수습해 전열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