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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 테러 비상령…친선경기·각국 리그 중단 목소리 높아져

중앙일보

입력

유럽축구가 테러 공포로 꽁꽁 얼어붙었다. 오는 6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유럽축구연맹(UEFA)선수권(유로 2016)은 물론 국가대표팀 친선경기와 각국 리그에 대해서도 중단 또는 취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한 폭탄 테러사건이 발생한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31명의 사망자와 271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이 사고로 인해 오는 29일 브뤼셀에서 열릴 예정이던 벨기에와 포르투갈의 A매치 평가전이 직격탄을 맞았다. 추가 테러 가능성을 우려해 경기 강행과 취소를 놓고 오락가락하던 벨기에축구협회는 24일 "포르투갈의 레이리아로 장소를 바꿔 경기를 치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벨기에대표팀은 테러 발생 직후 이틀간 훈련을 멈추고 긴장 속에 사태 추이를 지켜봤다.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유로 2016에도 비상이 걸렸다. 오는 6월 10일 프랑스와 루마니아의 개막전이 열리는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드 프랑스는 지난해 11월 파리 연쇄 테러 당시 IS의 주 공격 목표 중 한 곳이었다. 폭탄을 장착한 조끼를 입은 테러리스트가 경기장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해 인명피해(행인 1명 사망)가 적었지만 자칫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파리 테러 이후 넉 달 만에 브뤼셀에서 테러가 발생하자 UEFA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안카를로 아베테 UEFA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23일 프랑스 라디오 채널 '라디오24' 와의 인터뷰에서 "최악의 경우 유로 2016을 무관중으로 치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만 명이 몰리는 축구 경기장은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는 테러 집단의 표적이 되기 쉽다. 관중석 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에도 많은 인파가 모여들기에 입장객 관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IS는 파리 테러 직후 "앞으로 프랑스에서 더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라며 추가 테러를 예고했다.

테러 공포는 유럽 지역 대표팀과 클럽팀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메흐메드 바즈다레비치(56)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대표팀 감독은 지난 23일 "(테러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치를 순 없다. 어떤 일이 또 벌어질 지 모른다"며 룩셈부르크(26일), 스위스(30일)와 잡은 A매치 2연전을 취소해 달라고 자국 축구협회에 요청했다.

벨기에 주필러리그(1부리그) 명문 안더레흐트 소속 미드필더 안디 나하르(23·온두라스)와 공격수 마티아스 수아레스(28·아르헨티나)는 테러 발생 직후 소속팀에 나란히 이적을 요청했다. 나하르는 "(테러가 발생한) 벨기에는 위험한 곳이다. 나와 내 가족은 안전한 인생을 살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수아레스는 "올 여름에는 무조건 다른 리그로 옮길 예정이다. 벨기에에는 수많은 지하디스트(이슬람성전주의자)가 산다"고 말했다.

유럽 축구계 일각에서는 "당장 UEFA 챔피언스리그 일정부터 중단해야한다. 흥행보다는 선수들과 팬들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테러에 굴복해선 안 된다' 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프랑스대표팀 수비수 로랑 코시엘니(34·아스널)는 네덜란드와의 A매치 평가전(26일)에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 "피해자 가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한다. 모든 프랑스인들은 벨기에와 함께 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예정대로 경기를 해야한다. 경기장을 찾을 팬들과 TV로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웃음을 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파리 테러 당시 여동생이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사연이 알려져 화제가 된 프랑스 공격수 앙투안 그리즈만(25·아틀레티코 마드리드)도 "브뤼셀 테러로 인해 옛 기억이 다시 떠올라 괴롭지만 경기장 안은 언제나 안전하다고 믿는다"며 힘을 보탰다. 잉글랜드는 26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독일과의 원정 평가전을 예정대로 치르기로 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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