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지혜 모아 한국현대사 소모적 이념논쟁 끝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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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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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출신의 원로 법조인이 연 ‘역사 법정’은 냉혹한 판결이 아니라 간절한 호소로 마무리됐다. 김인섭(80·사진) 태평양 법무법인 명예 대표변호사는 판결문을 대신한 마무리 발언에서 “한국 현대사를 둘러싼 소모적 이념 싸움을 그치기 위해 국민들이 지혜를 모으자”고 당부했다.

보수·진보 모두 참여한 ‘역사 법정’
“국가건설, 긍정사관으로 읽어야”
“인권부재 정치지배 정당화 안돼”

“시각이 다른 사람들 간 새로운 대화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며 “전교조 교사들이나 민노총 노동자들과도 직접 만나 대화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변호사가 기획한 ‘가상 법정’이 2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그가 최근 펴낸 책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민주시민을 위한 대한민국 현대사』(영림카디널)를 놓고 보수·진보 성향의 학자들이 두루 참석해 토론하는 심포지엄 형식으로 진행됐다. 전상인(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사회를 보고, 김명섭(연세대 정치외교학)·김호기(연세대 사회학)·박기주(성신여대 경제학)·박태균(서울대 국제대학원)·윤평중(한신대 철학)·허동현(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패널로 참석했다. 주제는 ‘대한민국 국민형성(Nation Building)을 위한 현대사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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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형성을 위한 현대사를 묻는다’를 주제로 토론하는 참석자들. 왼쪽부터 허동현(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윤평중(한신대)·박태균(서울대 국제대학원)·전상인(서울대 환경대학원)·박기주(성신여대)·김호기(연세대)·김명섭(연세대) 교수. 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이사장 우창록)가 주최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법률 전문가인데다 고령인 저자가 다시 역사를 공부해 책까지 펴낸 열정과 문제의식을 평가하는데 참석자들 간에 이견은 없었다. ‘국가발전 사관’을 중심으로 건국-산업화-민주화 과정을 풀어가는 각론에선 저자와 의견을 달리하기도 했다. 윤평중 교수는 “기적적인 성취를 이룬 대한민국이 오늘날 내적 갈등에 휩싸여 있고 미래 불안, 현실 불만이 축적돼 거대한 분노 사회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며 “한국사회를 괴롭히는 대립과 대결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국가건설 시기와 민주화 시기 모두를 긍정사관의 해석학으로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호기 교수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은 분단국가의 출발이기도 한 점을 모두 반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면서도 “산업화 시대에 대한 평가에서 인권과 민주주의가 부재한 정치적 지배를 결과의 논리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전상인 교수는 “내가 아는 지식, 내가 믿는 지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것이 우리 시대 지식인의 과제”라며 “한국 현대사 연구가 마치 진보·보수 양 진영의 종교 교리문답처럼 돼버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이런 대화의 자리를 제도화해도 좋겠다. 펀드를 만들어 매주 토론을 몇 년간 하다 보면 서로 공통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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