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에 해적도 불황, 유조선 약탈 줄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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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유가 하락으로 고전하는 건 석유업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조선을 급습해 석유를 훔치던 해적들도 저유가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곤경에 처했다. 그 덕에 지구촌 해양 운송을 위협하던 해적질도 줄었다.

수익 반의 반 토막 … 위험 부담도 커
아프리카 해상 석유 탈취 29% 감소

허핑턴포스트는 지난해 서아프리카 기니만에서 해적들의 유조선 약탈이 전년보다 29% 감소했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매체는 영국의 해운 컨설팅 기업 드라이아드 매리타임를 인용, 2014년 이 지역에서 해적에 의한 유조선 약탈·납치가 69건 발생했지만 지난해엔 49건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플로렌시아 아데니케 우콩가 기니만위원회(GGC) 사무총장은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대로 떨어지면서 100달러 때와 같은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저유가가 해적 활동 등 해양 범죄를 줄이는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GGC는 앙골라·가봉·나이지리아·적도기니 등 기니만 주변국들이 정치·경제 협력 및 해적 공동 대응을 위해 설립한 협의체다.

해적질이 가장 성행했던 2011~2012년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대를 유지했다. 수익성이 좋아 유조선은 해적들의 주요 목표물이 됐다. 그러나 2014년 하반기 100달러 아래로 떨어진 뒤 하락을 거듭하면서 본격적인 저유가 시대를 열었다. 브렌트유의 경우 지난해 1월 배럴당 27.88달러까지 곤두박질쳤다.

전리품인 석유의 가치가 떨어지자 해적들의 수익도 반의 반 토막 이 됐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유조선을 공격할 필요가 줄어든 것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2011년 전 세계 해적 공격 건수의 55%를 차지했던 소말리아 해역에서도 미국·영국 등의 해적 소탕 작전 에 힘입어 지난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사실 유조선을 대상으로 한 해적질은 그리 간단치 않다. 지난달 온라인 매체 쿼츠에 따르면 거대한 유조선에 승선하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해적질이 성행하면서 해양 경비도 강화됐다. 이 때문에 해적들은 유조선을 탈취해 위치를 파악할 수 없도록 장비를 고장 낸 뒤 석유를 옮겨 싣고 달아난다. 훔친 석유를 불법으로 정제하고 판로도 찾아야 한다.

해양 범죄를 감시하는 비정부기구 ‘해적 없는 바다(Oceans Beyond Piracy)’ 측은 “석유 강탈에 성공하기 위해선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해적들의 공격 성공률은 제한적이다”고 설명했다. ‘해적 없는 바다’의 보고서에서도 2013년 기니만에서 발생한 100건에 이르는 선박 공격이 이듬해 30% 이상 감소했다. 실제 석유 탈취로 이어진 공격 도 2013년 56건에서 이듬해 26건으로 줄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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