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알파고 포비아의 해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기사 이미지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서 알파고가 압승한 데 대한 반응이 경탄과 경악 사이를 오가며 매우 혼란스럽다. 우선은 알파고의 승리는 기뻐할 일이다. 산업이란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기 위해 발전하는 것이고, AI라고 다를 이유가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지능적 판단을 돕는 AI에 인력과 자본이 확대 투입될 것이고, 질병 치료를 포함한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성과를 내면서 AI는 더욱 발전해 나갈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기념비적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체감할 기회가 주어진 것 역시 기뻐할 일이다.

그렇다면 알파고 포비아라고 부를 만한 이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미래에 관한 두려움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늘이 무너질까 두려워할 수도, 대학을 졸업하면 어떻게 될까 두려워할 수도 있고, 핵전쟁이 벌어질까 두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각각 벌어지지 않을 일, 벌어질 일, 벌어질 수도 있는 일에 대한 두려움들이다. AI가 발전하면 인류와 동등한 새로운 개체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하늘이 무너질까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AI는 지능을 다루는 분야이고 지능은 인간 마음의 일부분일 뿐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희로애락과 같은 감성이 자리하는데, 감성은 마음을 다양한 색으로 채색해 풍부하게 한다. 인간의 감성을 혹하게 만드는 AI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감성을 갖는 기계는 만들 수 없다. 또 인간은 기존의 문제를 푸는 데 머물지 않고 새로운 문제를 창의적으로 만들어가며, 주어진 세계 너머 초월적 영역을 상상하는 능력을 갖는다. 기계가 넘볼 수 없는 능력이다.

많은 언론 보도와 다보스포럼은 AI의 발전이 초래할 사회적 문제를 우려한다. AI가 발전되면 경제구조가 바뀌며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대량의 실업이 발생하리라 예견한다. 증기기관과 방직기계의 출현으로 기존의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었던 산업혁명기에 인류는 유사한 경험을 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인류는 창의적 능력으로 새로운 과제와 먹거리를 만들면서 새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국가의 성패가 갈린 과거의 사례에서 보듯 전환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장래의 국가경쟁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경쟁에서 뒤지지 않게 AI 산업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발전시키면서도, 전환기의 고통을 최소화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 우려는 발생할 수도 있는 일과 관련된다. 원자핵 관련 산업에서 볼 수 있듯 산업기술은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따라 인간에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AI의 산물 드론은 이미 전쟁무기 개발에 응용되고 있으며, AI와 전쟁무기의 결합이 가속화되면 인류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이보그가 인간을 공격하는 디스토피아적 상황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부작용이라고 AI 전문가들은 이야기하겠지만, 과학과 산업의 역사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과정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류의 존립을 위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AI의 연구 및 활용에 관한 구속력 있는 범세계적 협약 또는 헌장을 마련해야 하며, 지금 시작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감에 따라 AI는 산업과 결합할 것이고, 다시 경제적 이권과 결합될 것이다. 환경 관련 국제적 협약을 구성하는 것이 난항을 거듭한 경험에서 배울 수 있듯이, 관련 산업에 있어 이권이 개입하고 국가 간의 불균형이 커질수록 규제를 위한 범세계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우리나라가 협약 또는 헌장 제정을 주도해 보면 어떨까? 초강대국이 주도할 때 생기는 패권주의의 혐의를 살 일이 없어 순조롭게 일을 시작할 수 있고, 경제 신흥강국으로 선진국과 후진국의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뿐 아니라 IT 강국으로 알려져 있으면서 강대국과 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조건을 갖춘 국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국제 협약을 주도하게 되면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고, 국제적 조류를 숨가쁘게 따라온 국민들은 자긍심을 얻는다. 나쁘지 않은 부수효과다.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