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자녀가 안심지역 이탈" 키즈폰서 문자 올 땐 가슴 철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띠링. ‘자녀가 안심 지역을 이탈했습니다.’

초등생 둔 직장맘에게 들어보니
돌봄교실 끝나도 서너 시간 구멍
저녁까지 돌봐준 어린이집은 천국

직장맘 박모(34)씨는 얼마 전 근무 중 휴대전화 문자 한 통을 받고 가슴이 철렁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아들의 ‘키즈폰’에서 자동으로 발송된 문자였다. 집·학교·학원에서 1㎞ 이상 벗어나면 문자가 오게 설정해뒀다.

‘학원 마치고 집 근처 놀이터에서 놀 시간인데….’ 다급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보니 아들은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 지금 할머니랑 마트 가고 있어요.” 박씨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그는 “지난 2일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뒤 휴일을 제외하곤 하루도 가슴을 졸이지 않은 날이 없다”고 털어놨다.

박씨와 남편은 오전 7시30분이면 집을 나서고, 일러야 오후 8시에 퇴근한다. 한데 아이는 오전 9시에 등교해 오후 1시면 마친다. 박씨는 “시댁 근처에 살면서 아침 등교와 저녁식사는 시부모님 도움을 받지만 연로한 부모님께 아이를 내내 맡길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과 돌봄교실을 신청했다. 돌봄교실은 오후 5시(방학에는 오후 3시) 끝나니 서너 시간 구멍이 뚫렸다. 학교 근처 태권도 학원에 등록했다. 그는 “학교에서 아이를 픽업해 학원까지 데려다 주기 때문에 태권도 학원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이 손목에 위치 추적 기능이 있는 키즈폰을 채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확인해보고 있어요. 아직 어린 애가 학교와 학원, 집을 오가다가 중간에 어디로 사라져버리면 어쩌나 싶어 늘 조마조마해서요.”

박씨는 “선배 직장맘이 ‘어린이집이 천국이었다’고 푸념하곤 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땐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보살핌을 받았고, 원할 땐 조리사가 차려준 따뜻한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 아이가 길을 잃을 것이라는 불안감도 없었다.

초등학교 3, 4학년 연년생 엄마 김영미(35·서울 송파구)씨는 “큰애가 학교에 들어가면 자기 앞가림을 잘할 것이라 여겨 내 걱정이 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예전보다 더 마음이 흔들린다”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엄마들의 불안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키즈폰 가입자에서 엿볼 수 있다. 지난달 말 하루 평균 1000명, 이달 초는 1500명이 가입해 누적 가입자 수가 32만3000명에 이른다. 주로 초등 1, 2년생이 가입하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학생의 36%가 가입했다는 뜻이다.

개교기념일, 휴일과 휴일 사이에 있는 평일에 쉬는 재량휴업일, 여름·겨울방학 등 아이만 쉬는 날도 직장맘에게는 골칫거리다. 올해는 이런 날이 연간 70일이 넘는다. 직장맘들은 “그나마 미리 고민이라도 할 수 있게 1년치 휴일을 학교가 사전에 알려줘 다행”이라고 푸념했다. 예기치 못한 숙제나 준비물도 부담스럽다. 회사원 이모(33)씨는 퇴근 뒤 초등 1학년 아들의 알림장을 보니 ‘내일까지 미니 빗자루 세트’란 준비물이 적혀 있어 밤늦게 마트에 가기도 했다. 또 하루는 생각지 못한 숙제가 있어서 애 자는 사이 애 아빠가 대신하기도 했다.

엄마 아닌 사람이 대신 할 수 없는 일도 많다. 녹색어머니회, 어머니폴리스, 학부모회 등이다. ‘엄마 네트워크’도 걱정이다. 등교·하교 때 자연스레 형성된다는데, 워킹맘은 어찌할 방도가 없다. 학부모 총회, 공개수업 등이 대개 평일 낮에 열리는데, 회사 눈치 보고 휴가 내기가 여간 쉽지 않다. 양유정(37·여·사무직 회사원)씨는 “회사생활 하면서 웬만한 엄마 모임은 빠짐없이 참석했다. 몸이 열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씨는 학원을 마친 아이(초등학교 3학년)가 돌봄교실로 갈 방법이 마땅치 않아 학원만 6곳에 보낸다. 양씨는 “퇴근시간(오후 5시)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칼같이 퇴근한다”며 “가능하면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은데 언제까지일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부모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나마 행복한 편이다. 양가 부모가 멀리 살거나 일을 하면 도움 받을 길이 없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워킹맘 김미현(38)씨는 “지난 겨울방학에 돌봄교실이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12시까지만 운영한 데다 점심을 안 줬다. 매일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살짝 나와 애 점심을 먹여 학원에 보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나마도 돌봄교실마저 문을 닫거나, 학원 방학 때는 그 어린 것을 집에 혼자 두고 울면서 출근했다.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워킹맘 이모(35·서울 서초구)씨는 지난해 4월 10년 다닌 대기업을 그만뒀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 만에 일이었다. 이씨는 “아이가 어릴 땐 육아도우미에게 월 180만원 줘가며 직장생활을 계속했지만 야근을 밥 먹듯 하는 회사에 다니며 초등학생이 된 애를 돌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시기에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를 활용할 수 있었다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김기찬·박수련·이에스더·김민상·황수연·정종훈·노진호 기자, 이지현(서울여대 국문4) 인턴기자 ssshin@joongang.co.kr
◆공동취재=한국보건사회연구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