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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무인자동차시대를 준비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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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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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전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

인공지능(AI) 컴퓨터 알파고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은 다보스 포럼이 화두로 제시했던 제4차 산업혁명이 이미 시작됐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CPS(Cyber Physical System), 즉 사이버 물리시스템의 확산이다. CPS란 AI·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빅데이터 해석 역량이 강화된 사이버 세계와 물리적 현실세계가 서로 소통하며 지능적으로 제어되는 것을 말한다.

제4차 산업혁명은 CPS를 활용해 자동차 등 모든 기기가 인공지능을 통해 사람처럼 인식하고, 소통하고, 판단하는 똑똑한 로봇으로 진화될 것이다.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인프라 및 환경을 보다 지능적인 시스템으로 변형시켜 인간의 생활·사회·산업을 획기적으로 변혁시키는 것도 포함한다.

어느 나라가 이 같은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잘 적응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스위스 최대 은행 UBS는 우리나라를 25위로 평가했다. 이는 12위 일본, 16위 대만보다 한참 뒤지는 것이고 28위 중국을 간신히 앞서는 위치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에서 어느 나라가 승리할 것인지 결정할 격전지가 될 무인자동차를 놓고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는 미국·일본·중국에 비해 많이 뒤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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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며칠 전 우리나라 최초로 자율주행차 실제 도로 주행 허가를 정부로부터 받았다고 보도돼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이미 3년 전인 2013년에 실제 도로 주행 허가를 받아 시험을 시작했다. 더 놀라운 것은 중국 정부가 선전(深?)시에서 무려 20만 대의 차량에 전자 ID를 장착해 실시간으로 운행 상황을 파악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에 착수한 사실이다. 자율주행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나섰음을 의미한다.

무인자동차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미국을 대표하는 구글의 무인자동차는 누적 220만㎞를 달리는 동안 무사고를 기록했다. 애플도 타이탄프로젝트(Titan Project)팀을 만들어 2019년에 애플 로고가 달린 자동차를 출시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향후 무인자동차의 큰 수요자가 될 라이드셰어링(Ridesharing) 회사인 리프트(Lyft)에 5억 달러를 투자하고 무인자동차 벤처기업인 크루즈오토메이션(Cruise Automation)을 10억 달러에 인수했다.

미 연방정부도 무인자동차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40억 달러의 연구개발 보조금을 지원하고 미 도로안전교통국(NHTSA)은 무인자동차의 경우 기계를 운전자로 보는 법규 개정을 올해 상반기 내에 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같은 미국 정부와 업계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미국은 운전자가 반드시 앉아 있을 것을 요구하는 과도기 단계인 자율주행자동차를 건너뛰고 2020년에 바로 운전자가 없는 무인자동차 시대를 열려고 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전체 자동차 사고의 94%는 운전자 과실로 발생하기 때문에 무인자동차 시대가 시작되면 최소한 80% 정도의 자동차 사고가 없어지게 된다. 카셰어링의 활성화를 통해 전체 자동차 숫자가 3분의 1로 감소해 도시가 훨씬 덜 복잡해지고 공기의 질도 좋아진다. 무인자동차의 주차시간도 짧아짐으로써 주차 공간이 대폭 축소돼 이 공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등 엄청난 혜택을 가져온다. 이 때문에 2020년부터 열리게 될 무인자동차 시대는 빠르게 현실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와 업계는 2020년 무인자동차 시대의 개막을 믿지 않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를 거친 후 일러야 2025년에나 무인자동차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간 제4차 산업혁명의 최대 승부처인 무인자동차에서 대한민국은 실기해 뒤처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금을 대폭 확대하고, 버스전용차선을 활용한 무인자동차 시험운행을 허가해야 한다. 자동차와 신호등 간의 통신 등 무인자동차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정책적 수단들을 선제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법률적으로는 형법·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교통사고처리특례법·자동차관리법·제조물책임법·통신비밀보호법 등에 산재해 있는 규정들을 개정하는 것보다는 가칭 ‘무인자동차법’ 제정을 제안한다. 기계를 운전자로 보아 무인자동차 제조회사가 사고 책임을 모두 부담하는 조항, 핸들 등 자동차 조종장치가 없는 무인자동차의 제작인증 요건을 규정하는 조항을 염두에 둬야 한다. 무인자동차의 작동을 방해하기 위해 불량신호를 보내는 고의적 사고유발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과 수집된 무인자동차 탑승자의 대화 등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조항을 한군데로 모으는 등 사전 법률정비를 해둘 필요가 있다.

미국이 제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애플과 GM이 합병하고 구글과 포드가 손을 잡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우리나라 정부와 업계는 이에 대응하는 빅딜 전략까지 미리 그려놓아 무인자동차 시대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전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