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꼰대, 개저씨 중 당신은 어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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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호 29면

지금까지 한 달에 80여 명, 헤아려보니 1000명 이상의 남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코칭하며 지냈다. 세상엔 멋진 남자가 의외로 많음을 체감하며 남편에게는 미안함도 잊은 채 위험한 상상을 해본 적도 있지만, 이내 ‘저 남자가 내 남자가 아니라 천만다행이다’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하는 사람들 덕분에 결혼 생활이 잘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남자의 멋짐에는 이유가 있다. 표정이나 말투부터 패션 스타일과 매너 그리고 지적인 면까지 참으로 많은 이유들이 그를 멋지다고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남자의 못남에는 한 가지 이유만 존재한다. 바로 ‘꼰대짓’이다. 세상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고집에만 빠져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 말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대기업 모 사장은 겉으로는 매너 좋고 친절한 듯하지만 사실은 뿌리 깊은 남성 우월주의자다. 여자는 마누라 아니면 섹스 파트너 정도로만 생각한다. 물론 속으로야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걸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클라이언트는 나 같은 여성 컨설턴트에게 가장 힘든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고객 만족을 위해 어떻게든 ‘갑’인 고객과 더불어 ‘을’인 필자의 마음도 다치지 않는 선에서 코칭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은 성질 못 죽이는 필자의 성격 탓에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다 그렇고 그런 거지” 같은 심한 말을 듣고 끝나는 때도 있다. 도대체 뭐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란 말인가?


최근에는 이런 대책 없는 분들을 ‘개저씨’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원빈의 활약으로 한때 이미지 반전에 성공했던 ‘아저씨’라는 단어는 어느새 ‘개’라는 혐오감 섞인 접두사를 만나 젊은 직장 여성들이 화를 내며 연발하는 대사가 됐다. ‘꼰대’가 자신의 경험이나 방식을 상대방 의사와 관계없이 강요하듯 말하는 일방향 캐릭터였다면, ‘개저씨’는 한 술 더 떠 자신의 지위를 무기로 여성과 약자에게 갑질하는 중년 남자를 말한다.


그들은 집안에서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모로부터 대접받고 자란 소년이었을 거다. 학교에서는 공부 잘한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인성교육에는 힘을 쓰지 못했을 것이며 군대 가서는 상명하달식 마초 문화를 주입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족을 책임진다는 가장이라는 이유로 가부장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 없는 태도를 용인받아 왔다. 한국 사회는 오래도록 소년을 개저씨로 키워온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남자 선배들을 만나 솔직한 대화를 하다 보면 가족을 위해 희생해온 아빠이며 직장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온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는 중년 남자가 적지 않아 안타깝다.


요즘 중년 남자를 지칭하는 또 다른 유행어가 있다. 바로 ‘아재’다. 아저씨보다 훨씬 친근함을 유발하는 이 단어는 중년 남자의 권위주의를 모두 내려놓았다. 개저씨가 되지 않기 위해 아재 개그를 연마하며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중년들도 있다는 이야기다.


시대는 변했다. 그리고 꼰대가 되기에는 아직 너무 젊지 않은가. 필자가 원컨대, 당신은 알파고 보다 한 수 높은 인생의 고수다. 부디 고수의 기품과 낭만을 아는 멋진 남자로 남기를.


허은아(주)예라고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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