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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50 할리우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71호 30면

‘헤일, 시저!’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조엘·에단 코엔 형제가 만든 테마파크 같은 영화다. 1950년 할리우드 황금기를 배경으로 5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절묘하게 접합시켰기 때문이다. 영화는 당시 최대 스튜디오인 캐피톨 픽쳐스의 대표 에디 매닉스(조슈 브롤린)을 중심으로 각각의 제작 현장을 세밀하게 비춘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에디의 가장 큰 당면 과제는 일순간 납치된 ‘헤일, 시저!’의 주인공을 찾는 일이다. 베어드 휘트록(조지 클루니)은 당대 최고의 인기 배우일 뿐더러 그가 나오는 이 영화는 로마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 중 최고 기대작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마지막 장면 촬영을 남기고 배우가 홀연히 사라지는 위기를 맞은 것이다.


자신을 ‘미래’라고 소개한 괴한이 협박 편지를 보내왔지만 에디는 한가롭게 협상에만 매달릴 수 없는 형편이다. 싱크로나이즈 영화 ‘조나의 딸’ 여주인공인 디애나 모란(스칼렛 요한슨)은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덜컥 임신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어디 그뿐이랴. 투자자 취향에 맞춰 서부극 ‘게으른 달’을 찍고 있던 호비 도일(엘든 이렌리치)을 애써 하차시켜 첩보 수사극 ‘즐겁게 춤을’로 보내놨더니 이번엔 감독 로렌스 로렌츠(랄프 파인즈)가 펄쩍 뛴다. 그동안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명장으로서 발음은 억망, 동작은 발연기인 호비 도일과는 도저히 못 해먹겠다며 노발대발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탭댄스가 신나는 뮤지컬 영화 ‘흔들리는 배’가 흔들리지 않고 순항하고 있다는 것 정도.


그럼에도 에디는 자신 앞에 놓인 장애물을 하나씩 치워나간다. 베어드의 납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추적하는 한편 디애나의 인기를 실추시키지 않는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어디선가 냄새를 맡고 달려와 매일같이 추궁하는 가십 칼럼니스트인 쌍둥이 자매 쏘라 대커와 테살리 대커(틸다 스윈튼)를 어르고 달래는 것 역시 그의 몫이다.


쏜살같이 흘러가는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키득키득 웃음이 절로 나면서도 우울한 상념에 잠기게 된다. 커다란 창고형 스튜디오를 잘게 쪼개 자리 잡고 있는 각각의 세트에서 어떤 이야기는 시작되고 어떤 이야기는 끝나가고 있는 상황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영화 속 다섯 편의 영화가 모두 무리 없이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숱하게 봐왔던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요, 뮤지컬과 서부극 등의 흥망성쇠 역시 이미 목도한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일 터다. 극단적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의 광풍이나 새롭게 등장한 TV의 위협 또한 우리가 몰랐던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2016년 현재에도 충분히 아름답다. 감독도, 작가도, 배우도 모두 제 몫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촬영장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지닌 조지 클루니는 물론 스칼렛 요한슨과 틸다 스윈튼은 몇 장면 등장하지 않음에도 강렬한 인상을 선사한다. ‘몸은 하나, 머리는 둘인 괴물’로 불리는 코엔 형제가 10년 동안 준비해온 프로젝트이니만큼 스태프와 엑스트라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대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마치 에디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당신네 영화판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던 항공사 임원의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영화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 온 몸을 다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영화는 지금도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공장 같은 세트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담아내는 장르는 한층 다양해졌을지언정 때로는 자본주의의 시녀가 되어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공고히 만들지도 모르고, 공산주의자들이 그랬듯 그들이 원하는 신념을 슬그머니 영화 속에 심어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사랑하는 건 어찌됐든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여전히 달콤한 꿈을 선사하는 힘을 영화가 가졌기 때문 아닐까. 영화가 옳다고 믿는 코엔 형제가 그 시절 선배 영화인들에게 바치는 연서는 그래서 따뜻하고 달달하다. 24일 개봉.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UPI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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