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다니엘의 문화탐구 생활] 나의 첫번째 한국영화 '짝패'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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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보다 더 한국인 같은 독일사람, 다니엘 린데만(사진=중앙포토)

“처음 본 한국영화나 드라마가 무엇인가요?” 한국에서 생활하며 받은 단골 질문 중 하나다. 그리고 의외의 대답에 사람들은 자주 놀란다. 첫 영화는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이 주연한 ‘짝패’(2006, 류승완 감독)였고, 첫 드라마는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 KBS2)였기 때문이다.

‘짝패’의 경우 아는 형이 추천해 준 영화였는데, 액션 장르를 좋아하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마지막 액션신의 카메라워크는 지금도 생생하다. 친구의 죽음을 파고들던 태수(정두홍)와 석환(류승완)이 경호원 넷과 싸우는 장면이다. 여느 액션영화라면 배우의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을 클로즈업하고 넘어갈 테지만, ‘짝패’는 움직임을 끊지 않고 거의 풀숏 그대로 담아냈다. 덕분에 몸 동작 전체가 잘 보여 액션이 훨씬 강렬하게 다가왔다. 실시간 촬영과 슬로모션 기법으로 멋지게 연출한 백덤블링 같은 고난도 동작을 볼 때는 저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이는 배우들의 뛰어난 무술 실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다른 영화에서는 본 적 없던 액션 스타일이었으니 넋을 놓고 볼 수밖에. 나는 ‘짝패’를 통해 그 어떤 한류 스타보다 먼저 정두홍 무술감독을 알게 되었고,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최근 종영한 TV 드라마 ‘무림학교’(KBS2)에 출연하면서, 정두홍 무술감독의 서울액션스쿨에 가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스턴트 전문가들과 함께 훈련하는 내내 영광스럽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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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짝패` 스틸컷]

‘짝패’를 처음 본 것은, 내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그래서 사투리가 대부분인 영화 속 대사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유일하게 알아들은 대사가 태수를 구하러 온 석환이 깡패들한테 던지는 말이었다. “야, 이 새끼들아! 니들 집엔 삼촌도 없냐?” 이 부분을 외워 한국 친구들에게 장난치듯 써먹어 봤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별로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내 ‘노잼’ 캐릭터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역시 친구의 추천으로 보게 됐다. 대사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금세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한국 드라마의 중요한 특징을 알게 됐다. 바로 인물들의 감정선이 롤러코스터 타듯 요동친다는 사실. 예를 들어 어떤 조연 캐릭터가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웃기고 나면, 그 다음 장면에서 갑자기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로 넘어가며 심금을 울리는 식이다. 웃다가 우는 격한 감정 노동(?)이 익숙지 않았던 나는, 이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덕분에 마음이 너무 부대껴 언제부터인가 드라마를 중간 중간 쉬어 가며 보는 버릇이 생겼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OST에 실린 김성필의 ‘소중한 사람’은 지금도 노래방에 가면 무조건 부르는 애창곡이다. 특히 ‘그댈 사랑하는 일 / 그댈 웃게 하는 일 / 그것 하나만 생각하고 (중략) 그대의 행복으로 살겠어’ 부분이 정말 좋다. 사랑의 핵심을 짚은 가사다.

생각해 보면 ‘짝패’와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감사한 마음이 크다. 존경할 만한 한국의 배우와 감독도 알게 되고, 한국어 공부에도 도움이 됐지만, 무엇보다 한국 사람과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고 할까. 특유의 흥(興)과 정(情)의 정서를 배우며 그렇게 나는 한국과 사랑에 빠졌다.

다니엘 린데만
독일사람? 한국사람? 베를린보다 서울의 통인시장에 더 많이 가 본, 이제는 한국의 다니엘! 1985년생 소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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