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위크] 파키스탄의 치욕 ‘명예살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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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한 여인을 살해하는 관습 그린 다큐멘터리 올해 오스카상 받아…관련 법 개정에 총리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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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병원에서 회복 중인 사바 막수드. 다큐멘터리 ‘강가의 소녀’ 주인공인 그녀는 파키스탄에서 ‘명예’의 미명 아래 살해될 뻔했다.

지난 2월 28일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다큐멘터리상은 샤르민 오바이드-치노이 감독의 ‘강가의 소녀: 용서의 가치(A Girl in the River: The Price of Forgiveness, 이하 ‘강가의 소녀’)’가 받았다. 오바이드-치노이 감독은 수상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결의가 단호한 여성들이 한데 뭉쳐 영화를 만들어 이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가의 소녀’는 파키스탄에서 공공연히 일어나는 명예살인을 주제로 다룬 다큐멘터리다. 명예살인이란 순결이나 정조를 잃은, 혹은 간통한 여성을 남편 등 가족 구성원이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살해하는 관습을 말한다. 파키스탄을 포함해 이집트·요르단·예멘 등 이슬람 국가에서 이뤄지며 살해한 가족은 가벼운 처벌을 받거나 아예 처벌받지 않는다.

‘강가의 소녀’는 파키스탄에서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사랑의 도피를 떠난 18세 여성 사바 막수드의 실제 이야기를 40분간 담아냈다. 2014년 막수드는 아버지와 삼촌에게 붙잡혀 구타당하고 심지어 아버지가 쏜 총에 머리를 맞은 뒤 자루 안에 넣어져 강물에 버려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서 명예살인으로 죽는 여성은 매년 1000여 명에 이른다.

오바이드-치노이 감독은 상을 받은 뒤 “이번 주 파키스탄 총리가 이 영화를 관람한 뒤 ‘명예’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행위를 막기 위해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며 “이것이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영화에서 우리는 막수드를 파키스탄 동부 펀잡 주의 구지란왈라에 있는 한 병원에서 만난다. 그곳에서 그녀는 잔혹한 폭력을 겪고 회복하는 중이다.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강물을 헤치고 나와 인근 주유소에서 도움을 받았다.

그녀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한 지 몇 시간만에 아버지와 삼촌에게 납치됐다. 처음엔 가족이 결혼에 찬성했지만 중간에 삼촌이 끼어들어 자신의 처남과 결혼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그녀를 차에 태우고 강으로 가기 전에 해치지 않겠다고 코란에 대고 맹세했지만 결국 약속을 저버린다. 영화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우리가 무슨 짓을 했던 그건 의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며 “딸아이는 우리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명예살인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던 오바이드-치노이 감독은 현지 신문에서 막수드에 관한 기사를 읽은 후 수소문해서 그녀를 찾아냈다.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그동안 그런 살인의 생존자가 없어서 그런 사람을 꼭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 뒤 바로 다음 날 그곳에 가서 작업을 시작했다. 막수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준비가 돼 있었다.”

막수드는 퇴원 후 숨어 지내다가 남편 카이세르와 함께 살고 싶어 한다. 카이세르는 영화에서 “그녀를 무척 사랑한다”며 “그녀가 없다면 죽는 게 낫다”고 말한다. 처음에 막수드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아버지와 삼촌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지역사회와 가족의 강한 압력에 못 이겨 법정에 나가 용서를 구한다. 그 후 그녀 아버지와 삼촌은 석방됐다. 막수드의 부모는 그녀를 용서했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녀 아버지는 “이 사건으로 모두가 나를 더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나를 명예로운 남자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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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 막수드는 머리에 총을 맞고 자루에 넣어져 강에 던져졌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한편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이런 상황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오바이드-치노이 감독은 파키스탄의 기존 ‘명예살인’ 관련법을 두고 “너무 허약하다”고 말했다. 법률상 가해자가 피해자 가족들과 합의하면 기소되지 않는 면책조항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이 용서하면 살인자와 가해자의 기소가 기각될 수 있다는 뜻이다. 샤리프 총리는 피해자와 가족이 용서하더라도 ‘명예살인’ 가해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며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파키스탄의 온라인에선 ‘명예살인 근절 캠페인’이 벌어졌다.

오바이드-치노이 감독은 명예살인의 경우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범행자가 기소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지만 현재 마련 중인 개정 법안의 내용이 정확히 뭔지, 용서의 효과가 법에서 어느 정도 제거될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막수드는 그동안 아들을 낳았다. 오바이드-치노이 감독은 그녀 명의의 토지 구입을 위해 모금운동을 벌였다. 또 그녀는 막수드가 이전에 갖지 못했던 출생 증명서 등 여러 서류를 발급받도록 도왔고, 이제 그녀를 위한 집을 짓는 데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중이다.

오바이드-치노이 감독은 2012년 염산 테러 공격을 당한 파키스탄 여성에 관한 다큐멘터리 ‘얼굴 구하기(Saving Face)’로 첫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그녀는 올해의 상은 뜻밖이지만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내가 강조하려 했던 이슈가 이처럼 세계적인 주목을 끌어 보람을 느낀다. 파키스탄에선 총리가 약속한 명예살인 관련법 개정이 큰 지지를 받고 있다. 많은 여성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될 영화로 오스카 트로피를 받아 귀국하는 것이 너무 기쁘다.”

파키스탄에서 여성 교육을 주장하다 이에 반대하는 파키스탄 탈레반의 총격을 받았던 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오바이드-치노이 감독의 수상소식에 “여성의 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내줘서 감사하고 온 국민이 그를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대학 버벡칼리지의 크리스티나 줄리어스 교수도 “명예폭력에 희생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줘서 감사하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하지만 이런 주목에도 파키스탄에선 명예살인이 계속된다. 지난 3월 1일에도 파키스탄 펀자브 주도 라호르에서 18세 여성이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 여성이 5시간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말하지 않아 아버지가 총을 쐈다며 명예살인 사건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루시 웨스트콧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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