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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은 클럽, 공부는 학교” 체육특기생 없는 스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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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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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대학이 운영 중인 스포츠과학연구소. [톨레도=송지훈 기자]

스페인 중남부 라 만차에 위치한 카스티야-라 만차대학교. 이 대학은 세르반테스의 풍자소설 ‘돈 키호테’ 못지 않은 지역 명물이다. 1982년 개교해 역사는 30여 년에 불과하지만 스페인 체육 발전에 기여하는 ‘스포츠 특성화 대학’으로 주목받는다.

학원스포츠 이젠 바꾸자 <하>
지역 클럽은 유소년 선수 키우고
대학은 경기력 향상 분석 지원만
엘리트체육 없애 대입 비리 차단

지난달 중순 톨레도에 위치한 이 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를 방문했다. 축구장·수영장·실내 체육관 등 체육시설 어디에서도 운동부 선수들이 땀을 흘리는 장면을 볼 수 없었다. 스페인을 비롯해 유럽 대부분의 대학은 한국과 같은 엘리트 운동부를 두지 않는다. 파블로 로드리게스 체육대학 부학장은 “‘운동은 지역 클럽에서, 공부는 학교에서’라는 국가 체육 정책 기조가 자리를 잡으면서 엘리트 운동부를 운영하는 학교들이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체육 특기생에 대한 대학 입시 혜택도 전무하다. 카스티야-라 만차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김대연(18) 씨는 “스페인에서 대학에 진학하려면 한국의 수 능 과 비슷한 셀렉티비다드(selectividad)라는 시험을 치러야 한다. 운동을 잘 한다는 이유로 합격 점수를 낮춰주는 경우는 없다” 고 말했다. 스페인 3부리그 축구팀 CD 시우다드 레알에서 미드필더로 활약 중인 그는 “ 미래를 위해 전공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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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대학은 엘리트 운동부를 두지 않고 지역 클럽을 직·간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체육 발전을 돕는다. 카스티야-라 만차대 재학생들이 참여하는 지역 아마추어 축구팀 경기 장면. [톨레도=송지훈 기자]

운동부가 없는 카스티야-라 만차대가 ‘스포츠 명문’으로 불리는 이유는 국가대표급 선수들 의 경기력 향상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로드리게스 부학장은 “우리 학교는 17세 이하 수영대표팀을 비롯해 여러 종목 선수들의 경기력 분석을 맡고 있다”면서 “종목과 선수별 특성을 감안한 효과적 훈련 방법을 찾아내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 말했다.

스페인의 엘리트 운동 선수 발굴과 육성은 오롯이 지역 내 스포츠 클럽의 몫이다. 축구·농구 등 프로 종목의 경우 클럽 내 육성 시스템을 통해 성인팀에 올려보낼 선수를 가려낸다. FC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출발해 성인 B팀까지 올라간 이승우(18)가 좋은 예다. 아마추어 종목은 클럽 동호인 중 기대주를 모아 시(市) 선발과 주(州) 선발을 거쳐 국가대표로 키우는 단계를 밟는다.

태권도 사범 출신으로 ‘스페인 태권도 개척자’로 불리는 김영기 전 스페인 교민회장은 “스페인 내 태권도장은 1600여 곳, 수련자는 15만명에 달하지만 대부분은 건강과 심신수련을 위해 배우는 사람들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땀을 흘리는 극소수가 카스티야-라 만차대를 비롯한 대학 연구센터의 집중 지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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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학원체육 시스템은 통합 대한체육회가 추구하는 이상향이다.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을 하나로 묶고, 이를 수직 계열화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게 통합체육회 출범의 목적이다. 지난 15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체육특기자 입학 비리 대책은 새 시대를 앞둔 체육 정책의 출발점으로 주목 받았다. 문체부는 입학 전형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는 한편 비리가 드러날 경우 관계자를 영구 제명하는 등 강도 높게 처벌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체육 입시비리를 뿌리뽑을 예정이다. 심동섭 문체부 체육정책국장은 “이번에 마련한 대책을 엄중하게 적용해 체육특기자 입학 비리를 뿌리 뽑을 것”이라면서 “공정 사회로 가는 길에 체육계가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말했다.

톨레도=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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