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도 꺾었다 ‘닥터 추’의 포석 농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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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부터 열리는 KCC와의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을 앞둔 추일승 오리온 감독. 끊임없이 연구하는 자세 덕분에 ‘닥터 추’로 불린다. 추 감독이 작전판을 들고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고양=김상선 기자]

프로농구계에서 뛰어난 지략가를 꼽으라면 사람들은 유재학(53) 울산 모비스 감독의 이름을 댄다. ‘만 가지 수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의 별명도 ‘만수(萬手)’다. 그러나 4년 연속 우승을 노렸던 유 감독은 또 다른 지략가에 덜미를 잡혔다. ‘만수’를 넘은 ‘추 박사’ 추일승(53) 오리온 감독이다.

첫 우승 꿈꾸는 추일승 오리온 감독
실업 선수 5년, 매니저로 6년 일해
농구 서적 번역하고 박사 학위도

19일부터 열릴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4승제)에서 정규리그 1위 전주 KCC와 맞붙는 고양 오리온은 4강 플레이오프(PO)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모비스에 3연승을 거두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오리온은 이에 앞서 6강 PO에서도 원주 동부에 3연승을 거뒀다. 오리온은 이 기세를 몰아 2001-02 시즌 이후 14년 만에 우승을 노린다. 추 감독은 프로 개인 첫 우승에 도전한다.

오리온 구단 관계자들조차 ‘4강 PO는 5차전까지 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추 감독은 보기좋게 이 예상을 깨뜨렸다. 오리온은 4강 PO 3경기 평균 득점이 69점에 머물러 정규리그 팀 평균 득점(81.2점)에도 크게 못 미쳤다. 그렇지만 끈끈한 수비력을 앞세워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모비스를 물리쳤다.

15일 고양체육관에서 만난 추 감독이 말한 ‘만수를 넘은 비책’은 가드 양동근(35)을 잡는 것이었다. 그는 “골밑에서 득점을 주더라도 동근이만 잡으면 된다는 전략으로 나섰다. 동근이가 모비스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니까 공격의 흐름을 원활하게 가져가지 못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양동근은 4강 PO에서 평균 10.6점에 그쳤다. 모비스의 득점도 평균 62점으로 묶었다.

동갑내기이자 옛 동료였던 유 감독을 넘고 싶어하는 의지도 작용했다. 추 감독은 현역 시절이던 1986년 기아산업에서 유 감독과 한솥밥을 먹었다. 추 감독은 “유 감독의 농구를 잘 안다. 어떤 전략으로 나올 지 대략 짐작이 가서 내 나름대로 준비해 나오면 들어맞았던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추 감독은 농구계의 숨은 전략가다. 23년 동안 미국 프로농구(NBA) 감독·코치를 지낸 델 해리스(78)가 쓴 ‘위닝 디펜스’라는 농구 서적을 직접 번역했다. 특히 그는 외국인 선수를 잘 뽑는 지도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미국 대학 졸업반 선수들을 샅샅이 훑고, 비시즌엔 선수를 찾기 위해 독일·프랑스·그리스로 건너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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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 ‘덩크 아티스트’로 떠오른 조 잭슨(24)은 추 감독이 미국 농구 명문 멤피스대 시절부터 눈여겨봤던 선수다. 창원 LG에서 득점 1위에 오른 트로이 길렌워터(28)와 2012-13 시즌 리바운드 1위에 올랐던 리온 윌리엄스(30)도 추 감독이 발탁한 외국인 선수다.

끊임없이 연구하는 자세 때문에 별명도 ‘추 박사’다. 추 감독은 실제로 2009년 프로농구 마케팅에 관한 논문으로 동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농구 관련 자료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2009년엔 농구 전문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그는 농구계에선 ‘잡초’로 불린다. 농구계의 ‘비주류’ 인 그가 평소 즐겨부르는 노래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my way)’다. 고교 2학년 때 키가 크다는 이유로 뒤늦게 농구를 시작한 그는 농구 명문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성장했다. 홍대부고를 거쳐 홍익대 창단 멤버로 뛰었지만 전국 대회에선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다.

기아산업에 입단한 뒤엔 한기범의 그늘에 가려 벤치를 지키다 90년 현역에서 은퇴하고 기아자동차 일반 사원으로 일했다. 91년부터는 6년간 기아자동차 농구단 매니저로도 활동했다. 추 감독은 “선수들 먹을 간식 사러가고, 숙소에서 도망 못 나가게 지키는 일들을 했다. 하루에 많이 자봐야 3시간 잤다”고 털어놨다.

1997년 상무 코치를 맡으면서 시작한 지도자 생활도 녹록치 않았다. 2002년 상무를 사상 첫 농구대잔치 우승으로 이끈 그는 2003년 부산 kt의 전신인 코리아텐더를 맡았다. 2011년부터 맡은 오리온도 이전 4시즌동안 10-9-10-10위에 그친 ‘만년 꼴찌팀’이었다. 그러나 그는 2012-13 시즌부터 오리온을 4년 연속 PO 진출을 이끌었다.

추 감독은 “선수들의 패배의식을 바꾸고 싶어서 경기가 끝나면 밤 12시에 체육관에서 훈련을 시켰다”면서 “감독으로 살아남으려면 주관이 뚜렷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철학은 1~2명이 아닌 5명이 모두 함께 뛰는 농구” 라고 말했다.

고양=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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