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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당선되면 한·미 동맹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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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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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현재로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의 공화당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베팅 시장의 예측에 따르면 그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20~30%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은 대다수 보수주의 외교 정책 전문가들에게 지극히 난감한 일이다. 트럼프가 예비선거에서 앞서가고 있지만 공화당 평당원의 약 반은 그를 반대한다. 그의 주변에는 눈에 띄는 외교 정책 고문이 없다. 그가 과연 외교 정책에 대해 연구한 적은 있는지도 의문이다. 토론 중 누군가 미사일·폭격기·잠수함으로 구성되는 미국의 ‘핵 삼원체제(nuclear triad)’에 대한 트럼프의 견해를 물었다. 그는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같은 토론에서 그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비난했다. ‘TPP에 중국이 포함됐다’는 게 반대 이유였다. 중국은 TPP에 참가하고 있지 않다. 중국 제품에 4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렇게 하면 무역전쟁 발발로 미국의 수출에 손해를 입힐 것이라고 모든 경제학자가 경고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칭찬하고 ‘무임승차’를 이유로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 일본을 비난했다.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미군 주둔 비용을 받아내겠다고 공약했다. 한국이 미국에 상당한 주둔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한국계 미국인 학생이 묻자 트럼프는 “당신 한국인인가?”라고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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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이러한 견해는 1930년대 이후로 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주류인 국제주의의 틀에서 크게 벗어난다. 미국 바깥 세상에 대한 미 의회, 공중, 지역 정치 지도자들의 견해와도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예비선거에서 계속 승리하고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이를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동맹에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려면 우선 그의 수사가 예비선거에서 이길 만큼의 지지를 확보하는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세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유는 경제 상황에 대한 좌절감이다. 한국을 포함해 모든 주요국이 세계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노동자들은 뒤로 처지고 있고 특별한 기술이 없는 대학 졸업자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부모 세대보다 자신 세대가 경제적으로 더 윤택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 미국인이 그렇지 않다는 미국인보다 많다. 역사상 최초의 여론조사 결과다.

버니 샌더스와 좌파는 정부 프로그램의 확대에서 답을 찾는다. 트럼프 지지자들을 포함해 우파에게는 비대해진 정부나 오바마 케어 등 좌파 정책이 문제의 원인이다. 임금 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두고 좌파·우파가 교착상태에 빠진 것도 유권자들의 분노를 계속 키운다. 많은 이가 트럼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고 결단성 있는 지도력을 정책으로 구현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말이다.

트럼프 현상의 두 번째 원인은 오바마 대통령의 이지적(理智的)이고 우유부단해 보이는 외교 정책이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응답자의 반이 오바마의 외교 리더십이 ‘약하다’고 본다. 설사 트럼프가 국제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더라도 최소한 외국 사람들에게 강경하게 나올 것이라고 많은 유권자가 기대한다. 이들은 트럼프 구상의 법률적 타당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세 번째 요인은 미국 정치에 아직도 남아 있는 ‘토착주의(土着主義·nativism)’, 심지어는 인종주의다. 2016년에도 뜨거운 사안이지만 역사의 방향은 확실하다. 1960년 많은 침례교 지도자들이 존 F 케네디 후보가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그를 반대했다. 케네디는 강력한 연설로 반대를 누그러뜨렸다. 수십 년 전에는 흑인의 권리에 공공연하게 반대하는 지도자들도 있었다. 트럼프 지지자라고 해서 모두 인종주의자이거나 토착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슬림과 불법 이민자에 대한 트럼프의 발언이 공감을 얻었다는 것은 미국이 어두운 차별의 역사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보호주의·토착주의·분노 같은 것들이 한·미 동맹에 손상을 입힐 것인가. 반(反)제도권 성향의 대통령들은 임기 초반 1~2년 동안 기존의 외교 정책을 뒤흔들었다. 미군 철수를 주장한 지미 카터 대통령이 생각난다. 하지만 주류인 국제주의적인 견해가 항상 복원됐다.

어떤 정치적인 폭풍이 휘몰아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저항력이 한·미 동맹에 내재한다. 한·미 동맹에 대한 미 의회와 주정부의 지지는 매우 강력하며 초당적이다. 한·미 동맹에 대한 미국 국민의 지지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또 퓨리서치센터(PRC)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3분의 2가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과반 이상이 TPP를 지지한다. 게다가 미국 국내 정치에서 한국계 미국인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컸던 때는 없다. 미국 대선 정국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제도, 국익, 공중의 국제주의적 세계관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