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키워드로 보는 사설

한국형 재벌과 재벌 승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일상에서 재벌은 다의적으로 사용된다. 때로는 큰 부자를, 때로는 기업그룹의 총수를, 때로는 거대 기업그룹을 가리킨다. 공정거래법에서는 매년 총자산 규모 5조원을 기준으로 ‘대규모 기업집단’을 규정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가족 중심으로 지배하는 기업집단’을 의미한다. 기업의 지배구조는 소유·지배·경영으로 이루어진다. 소유는 주식의 소유권이고, 지배는 대표이사의 임명권이고, 경영은 회사의 관리권이다. 따라서 재벌은 한 개인과 그 가족이 이 지배구조에 결정권한을 가진 사업체 집단을 의미한다.

선진국의 경우 세계적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지배권을 행사할 정도로 다량의 주식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대부분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창업자의 경영권이 세습되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그룹 내 계열회사끼리 지분을 상호 소유하면서 지배권을 행사하고 소유 고리의 핵심 역할을 하는 중핵기업을 총수가 지배함으로써 모든 계열기업을 지배한다.

세대 상속이 이어지면서 소유의 규모가 직계가족에서 친족으로 확대되었고, 분할 승계로 인해 친족 재벌이라 불리기도 한다. 2005년 기준으로 친족 기업을 포함하면 30대 재벌군 내에서 5대 가문 집중률은 82%를 넘어섰다. 한국 재벌은 일본의 재벌보다 경영의 가족화 정도가 훨씬 높으며, 재벌 승계 과정에서 금수저 간의 격차도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