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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논점 - 두산 4세 경영체제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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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2016년 3월 3일 30면>
막 오른 4세 경영 시대 … 능력과 실적으로 인정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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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두산그룹 총수에 박정원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이 오르면서 국내 대기업의 4세 경영이 시작됐다. 이는 두산의 ‘형제 간 경영 승계’라는 독특한 전통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국내 최장수 기업인 두산은 3세 박용곤부터 용만까지 5남이 차례로 회장을 맡았고, 이번에 4세 정원 회장으로 넘어가면서 앞으로 사촌 승계를 예고했다. 또 2002년 용만 회장 취임 당시부터 다음은 정원 회장이라는 것이 공공연해졌던 터라 그룹 내부에서도 별다른 동요는 없다. 오히려 시장에선 최근 두산 대부분의 계열사가 재정 위기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새 회장의 취임에 거는 기대감이 커지며 주가가 오르는 등 긍정적인 신호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두산 내부의 문제를 넘어 국내 대기업들의 독특한 가족 세습 경영 체제가 4세까지 이어진 점에 대해선 우리 사회에 많은 생각을 할 문제를 던졌다. 범삼성가와 범현대가 등은 이미 3세 경영을 안착시켰다. 또 GS와 코오롱 등은 최근 4세 경영인들을 임원으로 승진시키며 경영 승계작업에 들어가 있다. 높은 상속세 부담 등 불리한 여건에서도 경영 승계의 전통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사실 오너와 전문경영인 중 어느 쪽이 뛰어난지에 대한 정설은 없다. 한국형 오너경영은 장기적 안목과 신속한 의사결정, 과감한 투자라는 장점이 많았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3·4세 경영자들이 수비경영에 치중할 뿐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또 땅콩 회항 사건이나 금수저·흙수저 등의 표현에서 보듯 사회적 시선도 싸늘해지고 있다.

하지만 3·4세 경영자들은 선대로부터 폭넓은 경영수업을 받은 장점을 갖고 있다. 또한 과감한 기업가 정신이라는 DNA를 살려 한국 경제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경영자는 핏줄이 아니라 오로지 능력과 실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단지 금수저를 물고 나와 그 자리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어선 안 된다. 우리는 3·4세 경영인들이 경영권과 함께 사회적 책임도 승계함으로써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한겨레 <2016년 3월 4일 31면>
두산의 4세 체제와 한국 재벌 승계의 후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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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두산그룹 창업자 박승직의 증손자인 박정원 회장이 이달 말부터 그룹 지주회사인 ㈜두산의 이사회 의장을 맡아, 박용만 현 회장한테서 그룹 회장직을 넘겨받는다. 국내 재벌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4세 경영 체제가 출범하는 것이다. 설마 4세까지 승계하겠느냐는 일부의 시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두산그룹은 창업자의 아들인 박두병 초대 회장의 뜻에 따라 그동안 3세 ‘용’자 돌림 형제들이 그룹 회장을 맡아왔다. 장남인 박용곤 회장을 시작으로 5남인 현 박용만 회장까지 형제 가운데 4명이 맡은 뒤, 이번에 장남의 맏아들에게 자리를 넘기는 것이다.

대주주 가문의 경영권 승계가 두산만의 특징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관행이라고 해서 바람직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창업자의 후손에게 대대손손 뛰어난 경영능력이 유전되는 것은 아닌 까닭이다. 최근 두산그룹이 겪고 있는 위기도 현 박용만 회장이 기획조정실장 시절 소비재 산업에서 중공업으로 주력을 바꾼 데 뿌리를 두고 있다. 두산에 큰 어려움을 안긴 2007년 미국 건설장비 회사 밥캣 인수를 비롯해 많은 기업 인수합병을 그가 지휘했다.

두산에서도 과거 경영권 승계를 놓고 형제간 분쟁이 있었다. 2005년 3남인 박용성 회장이 추대됐을 때, 차남이 오너가의 비리를 검찰에 진정해 싸움이 벌어졌다. 그때 일에 견줘 이번 승계를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안이하다. 새로 그룹 경영을 맡을 박정원 회장의 경영능력을 예단하거나 깎아내릴 뜻은 전혀 없다. 다만, 우리나라 기업들이 처한 혹독한 환경을 가볍게 본 선택은 아니길 바란다.

두산이 4세 체제의 닻을 올렸으니 이제 다른 재벌 그룹들도 4세 승계에 큰 부담을 갖지 않을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의 계기를 찾지 못한 채 좀 더 표류할 것 같다.

논리 vs 논리
후계자들 폭넓은 경영수업 받고 성장 … 창업자 경영능력까지 유전되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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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左), 박정원(右)

지난 2일 두산그룹의 지주회사인 ㈜두산은 이사회에서 박용만 회장의 퇴임과 함께 박정원 신임 회장의 선임을 결정했다. 두산가의 내력을 보면, 1896년 종로 4가에 포목점을 연 박승직 창업주에서 시작해 두산그룹의 초대 회장인 박두병 회장, 그리고 5명의 ‘용’자 항렬 아들을 차례로 거친 후 이번에 ‘원’자 돌림을 쓰는 4대손으로 그룹 회장직이 승계되었다. 이번 결정은 한국 주요 대기업에서 재벌 4세가 그룹 총수에 오른 최초의 사건이어서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현재 재계 순위 11위로 평가받고 있는 두산그룹은 상장사 5개를 포함해 2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고 공정자산은 약 33조원에 이른다. 2만여 임직원과 그 하청업체 가족까지 합하면 수십만 명이 두산그룹과 명운을 함께하고 있다. 재벌그룹 안에서 최고의 지배력을 행사하는 그룹 총수의 권한은 매우 크다. 그룹의 규모가 방대한 만큼 그가 이끄는 생산·투자·판매에 관한 의사결정의 결과는 해당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또한 국내 재벌기업의 대부분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고 그 권한이 회장의 가족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경영 승계 또한 직계나 친족 등 가족관계 안에서 이어지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30대 재벌기업 중 약 50%가 친족 관계의 기업이며 그중 4대 가문이 차지하는 자산액은 30대 재벌 자산액의 60% 이상을 차지했다고 한다. 핵심 재벌기업으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4세 경영이 확산된다면 재벌기업 중심의 경제체제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두산의 향후 행보가 재벌 4세 경영의 선례로 남을 것이기에 그 파급효과가 큰 만큼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한겨레와 중앙도 두산그룹의 4세 체제 출범의 의미를 평가했다. 또한 가족 안에서 재벌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이어지는 관행을 되짚으면서 우려와 당부를 동시에 표했다. 그러나 두 사설은 재벌그룹 중심의 경제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인 시각 차이를 보였다.

우선 한겨레는 ‘한국 재벌 승계의 후진성’을 문제 삼았다. 가문 내 경영권 승계는 두산만의 특징이 아니라 재계의 관행이라는 점에서 일반적 현상이지만, 창업자의 경영능력까지 유전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합리성이 부족하다. 게다가 두산의 경우 과거 형제 승계 과정에서 발생한 분쟁으로 검찰 조사까지 받은 적이 있는 만큼 경영권을 둘러싼 다툼이 벌어질 경우 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크다. 이번 승계는 그때와는 달리 평화롭게 진행되었으나 근본적으로 대주주 가문의 경영권 승계가 선진국형 기업 환경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부정적 관점을 깔고 있다. 한겨레는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고 두산의 선례로 인해 시대에 뒤떨어진 시스템이 확산될 것을 우려했다.

중앙도 국내 대기업들의 경영권 가족 세습이 4세까지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독특한’ 체제라 평가하면서 한국적 기업 현상을 이질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형 오너경영과 3·4세로 이어지는 경영권 확보에 대해 장단점을 살핌으로써 현실을 수용하는 입장을 보였다. 오너 중심의 경영은 장기적 안목과 신속한 의사결정,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었고, 경영후계자들은 선대로부터 경영수업을 받으며 성장한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그러나 창업주가 보여준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지 못하거나 자신만의 실적으로 평가받지 못할 경우 사회적 시선도 싸늘해질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면서 경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기를 주문하면서 4세 경영시대가 안착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

두산은 120년의 최장수 기업인 덕분에 가장 먼저 4세 승계의 시점을 맞이했고, 장자승계와 형제승계를 결합한 전통을 갖고 있다. 두산의 경영권 승계와 그룹 운영은 한국형 재벌체제의 장단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사설 모두 두산에서 시작해 국내 재계 전반에 걸친 평가와 주문으로 끝을 맺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적 과정을 보면 한국형 재벌 체제의 긍정적 영향으로는 그룹기업 간의 내부 현금 흐름을 이용해 외부 자본의 의존성을 줄일 수 있고, 경기 변동에 관계없이 새로운 회사를 창업할 수 있어 외부 충격에 덜 민감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삼성, 엘지(LG), 현대, 에스케이(SK) 등 경쟁력 있는 글로벌 기업의 출현을 앞당긴 것도 초대형 기업집단이 하나로 움직이는 구조 때문이다.

그러나 장점이 곧 부작용의 원인이 되었으며 시스템 전체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자본력이 강한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으로 인해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이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뿌리가 약한 경제구조의 원인이 되었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면서 독과점적 지위로 인해 산업 전반의 효율성도 떨어지고 있다. 또한 소유와 경영이 결합된 채 가족 세습으로 이어져 재벌 총수를 정점으로 한 상명하달식 기업문화가 정착되었고 전문경영인의 성장도 더디다. 끝으로 재벌 총수의 오판이 그룹 전체의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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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두산도 지난해 그룹 매출이 전년도 대비 6%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73%나 감소했다고 한다. 두산인프라코어·두산중공업 등 주요 계열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고, 두산건설의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등급으로 강등되었다. 전임 회장이 남긴 경영 악화의 숙제를 새로 선임된 박정원 회장이 극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전망은 양자가 공존한다. 외국 기업의 경우 최고경영자가 바뀌면 새로운 기대감으로 주가가 오르지만, 현재 두산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그리 크지 않다. 한편 경제개혁연구소가 11개 재벌그룹 총수의 승계자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평가를 실시(2015년)한 결과 박정원 회장은 2위의 평가를 받았다. 물론 전체 평균이 낮은 편(35.79점/100점 만점)이었으나 승계자 그룹에서 경영능력이 상위권이었다. 종합해 보면 국민과 전문가 집단은 세습경영자들에 거는 기대와 의혹이 공존한다. 재벌구조의 개선을 통해 후진성을 극복하는 장기적 노력과 더불어 승계자들의 경영능력 향상이나 전문경영인 양성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