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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경제·핵 병진 노선과의 싸움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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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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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
도쿄총국장

김일성의 경제·국방 병진 노선은 북한 현대사에서 일대 변곡점이었다. 김일성은 1962년 이 노선을 제시했다. ‘한 손에 무기를, 다른 한 손에 낫과 망치를’이라는 구호는 이때 나왔다. 박정희 집권 1년 만이었다. 병진 노선은 66년 공식화됐다. 북한은 이듬해부터 5년간 예산의 30%가량을 국방비로 썼다고 발표했다. 그 전까지 비율은 약 19%(추정치)였다. 김일성은 70년 5차 당대회에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우리의 국방력은 크고 비싼 대가로 이뤄졌다. 털어놓고 말해 우리의 국방비 지출은 나라와 인구가 적은 데 비해 너무나 큰 부담이 됐다.” 김일성은 1차 7개년 경제계획(61~67년)을 3년 연장했다. 과도한 군사비의 후유증은 컸다. 경제에서 남북 간 역전이 일어났다.

김일성이 새 노선을 들고나온 것은 말년이었다. 93년 3차 7개년 경제계획(87~93년)을 다시 3년간 연장하면서 농업·경공업·무역의 3대 제일주의를 제시했다. 강성산 당시 총리는 보고에서 “우리 경제는 발전의 속도와 균형을 잃었다”며 그 이유로 전쟁 위협에 따른 방위력 강화 등을 들었다. 핵에 대한 집착도 빼놓을 수 없다. 김일성은 무기의 핵과 평화의 핵(원자력) 가운데 전자를 택했다. 남한의 원자력은 산업 입국의 토대였고, 북한의 핵은 국제사회 제재의 블랙홀 격이 됐다. 병진 노선의 종착역은 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이었다.

김정은이 선대의 노선을 계승·심화했다는 경제·핵무력 병진 노선을 내놓은 지 31일로 만 3년이다. 그는 이 노선이 국방비를 늘리지 않고 방위력을 강화하면서 경제 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을 꾀할 수 있는 방도라고 설명했다. 남북 간 통상 전력(戰力) 불균형을 핵·미사일의 비대칭 전력으로 메워 군사비를 추가로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일 게다. 올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는 이 노선의 필연적 산물이다. 북한이 현재 벌이는 대중 동원 운동인 ‘70일 전투’도 예견된 일이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견뎌내려면 대중의 허리끈을 졸라맬 수밖에 없다. 우려스러운 점은 북한의 군사 모험주의다. 김일성의 병진 노선이 한창이던 68년 청와대 기습, 미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등이 일어났다. 당시 대남사업 총책은 현재의 김영철 정찰총국장과 마찬가지로 군인 출신(허봉학)이었다. 만반의 대비 태세가 필요하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제재의 지향점이다. 여러 관점과 얘기가 흘러나오지만 병진 노선 폐기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북한 정권 교체 운운하면 주변국과의 공조가 어렵다. 남북 간 배타적 대결도 끝이 없다. 핵 개발에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보여줘야 국제 비확산 체제도 지켜진다.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 핵에 핵 개발로 맞서겠다는 것도 우책(愚策)이다. 평화의 핵 정책을 관철할 때 통일에 대한 주변국의 경계와 견제가 줄어든다. 한 손에 핵무기를, 다른 손에 미사일을 들고 이밥에 고깃국을 먹을 순 없다. 정책적 확신과 인내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오영환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