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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핵, 평양의 알파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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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영종
이영종 기자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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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세상에 없던 일이 벌어졌다. 평양의 최고지도자가 핵탄두 앞에 선 것이다. 그제 아침 북녘의 관영 선전매체는 사진 여러 장과 함께 이 모습을 공개했다. 지하 수장고에 꽁꽁 감춰야 할 비밀 전략병기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초유의 일을 벌인 것이다. 김정은의 계산은 이랬을 법하다. ‘수소탄 실험 성공’이라는 발표에도 꿈쩍 않는 남조선과 국제사회에 실물 핵탄두를 던져보자. 사상 최대 규모의 합동 군사연습으로 숨통을 조여오던 한·미가 움찔할 것이다. 서울의 인민들은 핵전쟁 공포 속에 술렁일 것이고 대북 압박의 고삐를 늦추라는 여론이 힘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32세의 최고지도자는 주판알을 튕겼을 수 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핵탄두라고 선보인 은빛 구면체는 지름 20㎜의 기석(棋石)에 밀렸다. 인간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벌인 세기의 대결에 파묻혀 버린 것이다. 김정은 뉴스로 남한 언론의 머리를 장식하겠다는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구상(이걸 우리 정보 당국은 ‘북한판 헤드라인 전략’이라고 부른다)이 이번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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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요 며칠 세간의 관심은 온통 인공지능이 열어갈 인류의 미래에 쏠려 있다. 평양 지도부만 핵을 부여잡고 버둥대는 형국이다. 역사적 대국을 한 줄도 다루지 못하고 있는 건 지구상에서 북한의 보도기관뿐이다. 노동신문 1면 전체를 채운 김정은과 핵탄두 사진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4년 전 김정은의 등장에 관심과 기대가 쏠렸던 건 사실이다. 10대 시절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를 경험한 해외 유학파는 뭔가 다를 것이란 측면에서였다. 애플 컴퓨터를 집무실 책상에 둔 젊은 지도자는 선대(先代) 수령인 김일성·김정일과 다르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한몫했다.

집권 직후인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할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석 달 뒤 모란봉악단 창단 공연에 미 자본주의 상징인 미키마우스 캐릭터가 등장한 것도 마찬가지다. 20여 개의 경제 개방특구를 선포한 것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그뿐이었다. 젊은 최고지도자는 빠르게 절대권력에 취해갔고 어느 순간 통제 불능으로 빠져들었다. 그가 권좌에 오르자마자 찬양과 숭배의 광풍이 북한 전역을 휘감았다. 이른바 ‘백두혈통’이라는 그의 가계에 대한 우상화는 이미 절정을 치닫고 있다. 김일성·김정일 때보다 결코 덜하지 않을 수준이다. 머지않아 생모인 고영희(2004년 사망)를 ‘존경하는 어머님’으로 떠받드는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무자비한 숙청의 칼날이 많은 희생을 불렀다는 점이다. 회의 때 졸았다는 이유로, 지시에 말대꾸를 했다는 이유로 군부와 당의 노간부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대(代)를 이어 충성하던 60~70대의 노련한 일꾼들이 가족과 동료·부하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가벗겨진 채 시신도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무참히 처형당했다. 인륜을 벗어난 끔찍한 장면에 평양 파워엘리트 내부에서도 숨죽인 분노가 들끓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밀어닥친 유엔 대북제재의 파고는 예상보다 거칠어 보인다. 직격탄을 맞은 외항 선원들은 배를 빼앗긴 채 추방됐다. 나머지 화물선들은 생명줄인 무전 교신조차 끈 채 유령선처럼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다는 얘기다. 인민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질 기세다. 영하 30~40도의 날씨에 백두산발전소 건설에 내몰렸던 청년들은 다시 ‘70일 전투’에 동원됐다. 김정은이 5월 개최를 예고한 7차 당 대회를 겨냥한 노력동원 캠페인이다. “노동당에 황금산을 선물하자”는 구호에 등골이 휠 지경이란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도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폭주기관차처럼 내달린다. 핵 선제타격권을 언급하며 “주저 없이 핵으로 냅다 치라”고 지시하는 모습은 젊은 지도자의 혈기 방장으로 치부하기에는 섬뜩하다. 남한을 향해 수시로 ‘적(敵)’이라고 지칭하는 건 호전적 대남 인식의 표출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현재로서는 그를 만류하거나 적절한 조언을 해줄 인물이나 세력은 없어 보인다. 강경 일변도의 노선만이 판친다. 국방위원회나 최고사령부는 물론 대남 부서인 통일전선부나 외교라인은 충성경쟁을 벌이듯 성명을 쏟아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극언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내는 것도 살아남기 위한 북한 파벌들의 몸부림이다. 선전선동부의 어용 작가와 관영 선전매체 종사원들은 오직 최고지도자를 떠받드는 미사여구(美辭麗句)만을 토해내고 있다.

소련 작가 알렉산드르 파데예프(1901~56)는 흐루쇼프에 의해 스탈린 격하운동이 시작되자 권총 자살을 택했다. “내가 성당을 지키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화장실이었다”는 게 모범적 스탈린주의 창작가로 불린 그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언젠가 수령독재라는 장막이 걷히면 평양 한복판에서도 엘리트들의 이런 절규가 넘쳐날 것이다. 알파고가 노동신문의 톱기사로 등장하는 것도 그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