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환의 제대로 읽는 재팬] 삼각김밥전용농장, 드론 택배 특구…아베 ‘규제 프리’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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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동해와 면한 일본 니가타(新潟)시. 인구 80만의 이곳은 일본의 농업 수도에 가깝다. 경지 면적(2만8500㏊)과 연간 쌀 생산액(371억 엔), 농업 종사자(3122명)가 전국 기초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많다.

국가전략특구 10곳 선정
산간지역 농업, 의료, 국제관광 등
정부가 지자체·기업과 신산업 육성

이곳에 일본의 유력 편의점 업체인 로손이 지난해 3월 농업생산법인 ‘로손농장(LAWSON Farm) 니가타’를 설립했다. 9월엔 경작지인 논 5㏊에서 쌀 15t을 수확했다. 로손은 이 중 6t을 삼각 김밥으로 만들어 자사 점포에서 전량 판매했다. 나머지 9t은 정미해 2㎏짜리 봉지에 넣어 시중에 내놓았다. 로손농장은 앞으로 경지 면적을 100㏊로 늘릴 방침이다.

로손의 농업 진출과 쌀 가공은 규제 완화 덕분이다. 니가타시가 중앙 정부에 의해 대규모 농업 개혁을 위한 국가전략특구(일종의 경제특구)로 지정되면서 기업의 영농 참가가 수월해졌다. 농업생산법인 설립을 위해선 임원의 절반 이상이 농업 농사자가 돼야 하지만 니가타시는 1명만 돼도 가능하도록 했다.

로손농장 임원은 6명으로 실제 영농은 토박이인 고토 류스케(後藤龍佑·28)씨가 맡고 있다. 그는 "농촌의 고령화로 1인당 경작지가 늘고 있지만 판로 확보가 문제”라며 "로손이라는 판매처가 확보된 의미는 크다”고 말한다. 로손 참가로 쌀의 가공·판매·수출 길까지 열린 셈이다.

시노다 아키라(篠田昭) 니가타 시장은 “일본에선 기업이 농업에 진출한 뒤 이익이 나지 않을 경우 철수하는 것 등을 우려해 기업의 참여를 어렵게 하고 있다”며 “니가타시는 규제 완화를 통해 1차 산업인 농업의 6차 산업화를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니가타시는 규제 프리존(Free-zone)인 국가전략특구의 한 예다. 전략특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성장 전략의 핵심 축이다. 특정지역의 농업·의료·고용·교육·도시개발 등 규제완화를 통한 신산업 육성과 고용 창출을 위해 2014년 도입했다. 국가 경쟁력을 막는 고질적 암반(岩盤) 규제를 타파하는 드릴로도 묘사됐다. 아베 내각은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10개 구역을 선정했다. <그래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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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경제 특구가 지자체 주도형이었던 반해 전략특구는 내각 주도의 톱다운 방식이다. 지향점도 지역 경제 활성화가 아닌 국가 경쟁력 강화다. 도쿄권·간사이권·후쿠오카시 등 대도시권 중심으로 특구를 지정한 이유다. 전략특구 사업 계획은 중앙정부·지자체·민간의 3자로 구성된 회의체 협의를 통해 작성되며, 총리 승인으로 확정된다.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산업경쟁력회의 위원(전 경제재정 담당상)은 "특구는 나라를 대표하는 특구담당 장관, 지방을 대표하는 지사와 시장, 민간을 대표하는 기업 사장의 3자 통합본부로서 미니 독립정부”라고 했다.

인구 2만5000명인 효고(兵庫)현 야부(養父)시는 산간지 농업 개혁 거점의 전략특구로 지정된 케이스. 농업 분야에도 신용보증협회가 보증을 설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농업법인이 은행 융자를 받기 쉬운 만큼 채소 재배사업 등에 뛰어들기 쉽다. 야부시는 미쓰이(三井)물산과 손잡고 드론 시험비행도 실시했다. 외딴 지역에 대한 의약품 배송과 재해 현장 확인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드론 이용은 항공법과 전파법상의 규제 등에 대해 시측은 중앙 정부에 규제완화를 요청하고 있다. 지난 연말 전략특구로 지정된 지바(千葉)시도 올 4월 드론을 활용한 택배 서비스 실험에 나선다.

아이치(愛知)현 전략특구는 획기적이다. 도로공사가 맡고 있는 관내 8개 유료 도로 노선의 운영을 민간 기업에 맡기기로 했다. 올 10월까지 사업자 선정을 거쳐 민간 위탁을 시작할 계획이다. 아이치현은 다음달 개교하는 공립학교 아이치종합공과(工科)고교의 전공과목 관리도 민간에 위탁한다. 민간의 노하우를 살린 커리큘럼으로 자동차와 항공 분야 인재 육성에 나서기 위해서다.

아베 총리는 지난 연말 일부 특구를 추가하면서 "전략특구에는 끝이 없다. 지자체와 사업자로부터 경제효과가 높은 규제개혁 제안이 있으면 신속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안전·안심 제일주의에 매뉴얼 사회인 일본은 아직 규제 덩어리다. 아베 내각이 전략특구를 통해 거대한 바위에 구멍은 냈지만 본격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를 본궤도에 올려놓을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오영환 도쿄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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