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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문제 변수로 떠오른 러시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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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호 31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일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북 제재 결의에 따른 군사 훈련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사회의 체스 게임 플레이어들이 의미있게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있다.


대북 제재 결의에 대한 논의에서 우리는 2막의 정치 드라마를 엿볼 수 있다. 1막의 주요 주인공은 중국, 2막의 주인공은 러시아였다. 지난해 10월 10일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평양을 방문하며 중국과 북한 사이에는 새로운 친밀감을 형성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후 두 나라의 관계는 급속히 악화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유일한 동맹국인 중국은 북한을 계속 방어하고 있고 북한에 대한 제재 이행에 대해서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그러나 지난 1월 핵실험과 2월 미사일 시험 발사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 이행을 여전히 주저하고 있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우선 중국은 더딘 경제 발전을 비롯해 광범위한 내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지도자들은 국제적인 문제를 다루기보다 자국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한다. 두 번째로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반대하고 있다. 사드의 레이더는 중국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볼 수 있지만 중국은 그것을 방어할 기술적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환영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중국에 직접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고 계산한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미국과 사드 배치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힌 이후 중국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자국의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다. 지난달 23일,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만나 “북한의 비핵화가 가능하다면 사드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말은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사드 배치의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중국이 사드 배치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의 실질적인 종결을 이루는 일이다.


이 같은 논리에 따르면 중국은 이제 대북 제재를 이행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중국의 이익과 미국과의 연대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압박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과 케리 국무장관이 제재 결의안 초안에 합의한 것은 정치 드라마 1막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2막은 미국과 중국의 초안이 유엔 회원국에 공개된 다음날 시작됐다. 러시아는 초안을 수정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주말 투표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가 초안 수정을 요구한 것은 국제사회의 역학관계 속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먼저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서방세계와 긴장관계에 있으며 언제나 협상카드를 찾고 있다. 북한에 관한 어떠한 대북제재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동의 없이는 통과될 수 없다는 것을 미국과 중국에 강제적으로 상기시켰으며 동시에 향후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같은 다른 지역에 대한 유엔의 결의안을 지연시키거나 거부하는 등의 행위를 통한 협상력을 강화시켰다. 물론 향후 제재안이 유엔 내부에서 유지된다면 러시아의 영향력은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양자간 동의 하에 유엔의 테두리 밖에서 제재가 이루어진다면 러시아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는 북중간 관계가 변화하여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러시아는 중국의 대북 제재 결의 2270에 대한 동의 이후로 북한 체제와 최고 수준의 대화가 가능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 이는 북한의 후원자이자 국제사회로 통하는 대화 상대자였던 중국의 역할을 러시아가 대체할 기회다.


물론 러시아가 모든 영역에서 중국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14년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무역량은 북한의 전체 무역량 대비 1.4%에 불과하다. 게다가 러시아는 자국 내 경제 문제도 안고 있으며 중국이 북한에 제공했던 것 만큼의 원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5월 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북한 지도부는 약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대북제재에 대응하여 대화에 나가기보다는 더 강한 도발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대북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중심이었으나 이제 러시아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또한 사드 도입에 거부감을 가진 중국에 한국이 어떻게 대응 하느냐도 중요한 변수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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