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유를] 17. 아내들이여 화장을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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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30, 40대의 부부싸움이 가장 격렬하다. 30, 40대의 부부싸움으로 인한 119구급대의 긴급출동횟수는 20대나 50대 부부의 경우에 비해 거의 2배가 된다고 한다. 구급대원들의 출동으로 온 동네가 시끄러워도 이웃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체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가 아니라 거의 칼로 살 베기 수준이다. 30, 40대는 서로에 대한 따뜻한 애정보다는 생활의 자잘한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 피부로 와닿는 시기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자극만으로도 서로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낸다. 이런 상태에서 주5일 근무제로 휴일이 하루 더 늘어나면 과연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휴일이 하루 더 늘어나면 가족이 행복하게 지내기는커녕 이혼이 더 늘어난다는 실증적 사례가 있다.

1994년 독일의 폴크스바겐사는 경영 악화로 전체 근로자의 3분의1에 해당하는 약 3만명을 해고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노사 양측은 인력을 감축하지 않는 대신 노동시간을 20% 단축하고 실질임금은 약 10% 정도 삭감하는 것에 합의한다.

당시 폴크스바겐은 이미 주 36시간 노동제를 실시하고 있던 터라 노동시간 20% 감축은 주 28.8시간 노동제의 실시를 의미한다. 실직을 막기 위한 '일자리 나누기'차원에서 주4일 근무제가 실시된 것이다.

그 후 도시 거주자의 대부분이 폴크스바겐 공장 노동자였던 볼프스부르크시에는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이혼율이 약 60%이상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한해 3백쌍 정도에 불과하던 이혼건수가 1994년 이후 약 5백쌍으로 늘어났다.

하루 더 쉬게 되더니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가족 구성원간의 갈등이 한꺼번에 폭발해 가족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물론 임금 삭감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도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한동안 한국 중년남자들이 사랑했던 노래가 있다.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다(이상하게도 나는 이 노래를 '얼굴을 고치고'로 기억한다). 이전에 사랑했던 남자를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면서 화장을 고친다는 '애절한(?)' 가사의 노래다.

아내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화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은 이 철없는 남자들에게 '립스틱 짙게 바르고''분홍 립스틱'과 같은 노래가 구구절절 귀에 들어온다. 시골 다방에서나 어울릴 듯한 이 촌스러운 화장에도 가슴이 설레는 것이다.

휴일이 하루 더 늘어나면 아내들은 남편을 위한 화장을 해야 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향수도 뿌리고 둘만의 은밀한 외출을 계획해야 한다. 어느날 갑자기 새롭게 느껴지는 아내의 향수 냄새는 중년 남자의 인생을 살 만하게 해준다.

촌스럽게 짙게 바른 분홍 립스틱에도 흥분하던 남자들이다. 이렇게 화장을 고치는 사소한 노력으로도 늘어난 휴일로 인해 가족이 해체되는 재앙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김정운 명지대 대학원 여가정보학과 교수.문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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