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위험 노출형 펀드가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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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경기도 수원에 사는 주부 안모(57)씨는 지난해 미국 펀드에 가입했다. 최근 뉴욕 증시가 반등했다는 소식을 듣고 펀드 잔고를 확인해 봤는데 오르긴커녕 오히려 크게 하락해 있었다.

원화약세에 수익률 크게 올라
미국펀드, 환헤지형보다 10%P 높아
원화강세 땐 주가 올라도 손실 위험
환차익 노리는 엔화예금도 대안

놀란 마음에 증권사에 전화를 해보니 “환헤지 상품에 가입해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안씨는 설명을 들은 이후에도 왜 주가가 올랐는데 펀드 수익은 떨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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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달러와 엔화 등이 강세를 보이면서 환노출형 상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환(換)헤지(hedge)는 투자 대상국의 통화 가치가 하락할 때 입을 수 있는 손실을 막기 위해 환매 때의 환율을 현재 환율로 고정해 두는 것을 말한다.

안씨의 경우 환헤지 상품에 가입했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상승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챙기지 못한 것이다. 환노출형은 말 그대로 환율 변동분이 그대로 반영되는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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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펀드에 가입해도 환헤지 여부에 따라 수익률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3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삼성일본중소형FOCUS’ 환헤지 상품의 최근 6개월 수익률은 -4.21%(3월 2일 기준)였던 반면, 환노출형 상품의 수익률은 7.34%였다.

같은 기간 ‘하이미국1.5배레버리지’ 펀드도 환헤지 상품 수익률이 1.25% 하락한 반면 환노출형은 2.7%의 수익을 올렸다.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국내 설정 해외펀드 중 환헤지 상품의 비율은 80%에 달한다. 선진국에서 대부분의 해외펀드가 환노출형인 것과 대조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환헤지를 하기 위해선 적게는 0.03%, 많게는 0.5%의 수수료가 붙지만 판매사는 고객과의 분쟁 가능성에 대비해 환헤지를 권유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비과세 해외펀드가 일제히 출시되면서 환노출형 상품이 더 눈길을 끌고 있다. 2007년의 비과세 해외펀드와 달리 환차익까지 비과세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때마침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달러와 엔화 등이 강세를 보이면서 투자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장화탁 동부증권 연구원은 “주요 분석대상 10개국의 2000년 이후 주가와 환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일본·홍콩·미국 순으로 선진국에 투자할 때는 언헤지(환노출) 전략이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일본의 경우 환헤지를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태훈 삼성증권 연구원도 “해외주식 투자는 글로벌 분산투자 개념인 만큼 환율도 통화분산 차원에서 해당국가 통화로 가져가는 게 좋다”며 “선진시장의 경우 시장이 안 좋아졌을 때 통화가 강세를 보이기 때문에 환노출형 투자가 오히려 더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환노출형 상품에도 단점은 있다. 원화가 강세로 갈 때는 주가가 오르더라도 환손실 때문에 전체 수익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또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통화가치의 향방을 예측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김 연구원도 “환노출형 상품이 장점이 많더라도 고객 스스로가 ‘외환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하면 환헤지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환차익을 노린다면 엔화예금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원화 대신 엔화로 직접 예금계좌를 개설하면 된다. KEB하나은행·KB국민은행 등은 이런 외국환 예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로 엔화 가치가 장기간 절하돼 있었고, 일본 정부의 통화 개입도 어려워보여 달러당 엔화 가치가 더 오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일본 주식 및 채권 전망이 좋지 않다면 엔화 자체에 투자하는 게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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