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탁구의 믿음직한 두 '미들맨' 이상수-정영식

중앙일보

입력

 

기사 이미지

루마니아전 승리를 거둔 뒤 활짝 웃는 장우진-이상수-정영식 [대한탁구협회]

세계선수권은 하루살이 같아요. 한 경기에 모든 걸 걸어야 하니까요. 힘들어도 끝까지 해야지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고 있는 2016년 세계 단체전 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남자 탁구대표팀의 이상수(26·삼성생명·세계 19위)는 대회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 치르는 세계선수권이라는 점에서 대회의 의미는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남자 탁구 단체전 세계 랭킹 4위 한국은 조별 리그에서 순항을 이어갔다. 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말라와티 샤 알람 스타디움에서 끝난 대회 조별 예선 D조에서 크로아티아, 러시아, 이탈리아, 루마니아, 홍콩을 모두 이기고, 5전 전승을 거둬 조 1위로 8강에 직행했다. 첫 경기였던 크로아티아전을 3-2로 누른 뒤, 이탈리아, 러시아를 연달아 3-0으로 완파했고, 루마니아를 3-2, 홍콩을 3-1로 제압했다.

안재형 남자대표팀 코치는 "다른 조에 비해 절대 강자도, 약자도 없었다. 첫 경기였던 크로아티아전을 고전했지만 그 고비를 넘긴 게 선수들의 경기력이 향상되는 길로 연결됐다. 선수들 모두 각자 제 역할들을 잘 해줬고, 만족할 만 했던 조별 예선을 치렀다"고 평가했다.

기사 이미지

홍콩전에서 손을 맞잡는 정영식-이상수 [대한탁구협회]

그 중에서 대표팀의 허리 역할을 맡고 있는 중간층, 미들맨(middle man) 선수들의 활약이 컸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남자 팀 5명 중에 5경기에 모두 출전한 선수는 이상수와 정영식(24·대우증권·세계 13위) 둘 뿐이다. 둘은 이번 대회에서 주세혁(36), 정상은(26·이상 삼성생명), 그리고 대표팀 막내 장우진(21·대우증권) 사이에 중간 가교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특히 고비마다 번갈아가며 전승하는데 기여했다.

첫 경기였던 크로아티아전엔 이상수가 홀로 두 경기를 따내며 승리를 이끌었고, 최종전인 홍콩전에선 정영식이 게임 스코어 1-1로 맞서 승부처였던 세 번째 경기에서 탕펑을 3-2로 제압하고, 전승 8강 진출에 기여했다. 지난 2일 대표팀 숙소가 있는 쿠알라룸푸르 홀리데이빌라호텔에서 만난 둘은 "조별 리그에서 좋은 결과를 내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단체전 세계선수권에 처음 출전한 이상수는 "처음 이 대회에 나와서 걱정이 많았다. 긴장도 많이 하고 실수할까봐 그랬다. 그래도 지금까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별 예선 막판에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체전 세계선수권에서 통산 네 번째로 출전한 정영식은 2년 전 대회 8강에서 탈락했던 걸 떠올렸다. 그는 "지난 번 세계선수권에서 4강에 못 가서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래서 이번에 준비할 땐 어느 때보다 독하게 했다. 대회 초반엔 생각보다 잘 안 됐지만 크로아티아전을 이기고나서 좀 풀렸다. 지금까진 스스로 90점 정도 주고 싶다. 기술적인 면보다 쉽게 안 무너지고 지금까지 올라온 부분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둘은 한국 남자 탁구의 기대주로 오랫동안 주목 받았다. 정영식은 만 18세였던 2010년, 로테르담 세계선수권에서 김민석(KGC인삼공사)과 짝을 이뤄 남자 복식 동메달을 땄다. 이상수는 2013년, 파리 세계선수권 혼합 복식에서 박영숙(렛츠런)과 짝을 이뤄 은메달을 땄다. 국제 경쟁력을 갖췄지만 세계 톱랭커로 진입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공교롭게 둘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에도 선발되지 못했다. 그래서 '기대주로만 머무른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상수는 "기대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하고, 더 열심히 했어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비판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둘은 이를 더 악물었다. 중원고 선·후배인 둘은 평소 연습 파트너가 돼주고, 숙소에선 함께 경쟁국 선수들의 비디오를 보며 연구하고 토론하는 '학구파'다. 정영식은 "좌절한 순간도 많았지만 그만큼 열심히 최선을 다 해왔다. 지금은 오랫동안 탁구를 잘 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둘은 주세혁과 함께 이번 세계선수권뿐 아니라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도 출전한다. 그만큼 어느 때보다 운동에 대한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정영식은 "몇 년 전까지 나만을 위해 탁구를 해왔다고 본다면 지금은 우리를 생각한다. 내가 지면 다른 선수들도 자신감을 잃겠다는 생각으로 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승부욕도 커졌다"고 말했다. 이상수도 "베테랑인 (주)세혁이형이 있지만 우리가 주전이라 생각하고 운동하다보니 몰입하는 것도 더 달라졌다. 더 신중해지고, 더 차분해지려고 한다"고 했다.

둘의 이번 세계선수권 목표는 결승 진출이다. 정영식은 "상수형이 막판 루마니아, 홍콩전에서 잘 안 됐던 게 오히려 우리에겐 약이 될 것이다"며 힘을 불어넣었다. 이상수는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갖고, 8강전에 온 힘을 집중하고 싶다. 그 마음가짐 그대로라면 결승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년 전 대회 8강전에서 대만에 일격을 당해 탈락했던 아픔을 겪었던 정영식의 각오는 다부졌다. "그때보단 좀 더 마음적으로 더 성숙해졌어요. 과정이 좋았던 만큼 믿음과 자신감을 갖고 하면 분명히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끝까지 한 번 해볼게요." 남자 탁구대표팀은 4일, 북한-포르투갈 승자와 8강전을 치른다.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