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e판결] “한국전쟁 때 미군포격 사망, 국가배상 책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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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미군의 함포사격이 이뤄진 경북 포항시 환여동 송골해변 [과거사정리위원회 보고서]

한국전쟁 중에 미군의 함포 사격으로 사망한 민간인의 유족들이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미국 해군의 함포 사격으로 숨진 방모 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4888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사건은 1950년 9월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군 태평양함대 구축함 ‘헤이븐호’는 피난민 1000여명이 모여있던 경북 포항 송골해변에 10여분 동안 함포 15발을 발사했다. 국군 3사단 해안사격통제반으로부터 “피난민 사이에 적군이 섞여있으니 포격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격으로 방씨를 포함해 어린 아이와 노인ㆍ여자들이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을 조사한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6월 “한국 정부가 미국과 사과ㆍ피해보상 등에 관해 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적군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기 전까진 적으로 간주하라’는 미군 피난민 정책과 함포 사격이 영향을 끼친 사건이라고 본 것이다. 방씨의 유족들은 2013년 6월 정부를 상대로 “1억19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포격 명령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재판의 쟁점이었다. 1심은 “사격 명령은 국군 3사단에 파견된 미군 측 장교에 의해 이뤄졌다”며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2심은 “미군 장교에겐 독자적 재량권이 없었고, 국군이 (미군 측에) 포격해달라고 요청한 게 포격이 이뤄진 결정적 계기”라며 한국 정부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과거사위 결정의 취지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과거사위의 결정은 ‘한국 정부 또는 소속 공무원의 가해 행위가 아니라 미군에 의해 (방씨가) 희생됐다’는 취지”라며 한국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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