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환]남북관계의 새 분기점: 제11차 남북장관급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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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7월 9일부터 12일까지 서울에서 제11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린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라 열리기 시작한 남북장관급회담이 어느덧 11차라는 두자리 수를 기록하면서 북한 핵문제 등 돌출변수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이어 나가고 있다.

장관급회담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이행과 남북간 각종 현안문제를 종합적으로 협의·해결하는 중심적 협의체로서 남북적십자회담, 남북국방장관회담,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및 실무협의회 등 여러 분야 회담에서 합의된 사항들의 이행을 총괄·조정하고 지원해 나가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 열리는 제11차 장관급회담은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 국제적 압박이 구체화되는 시점에서 열리기 때문에 제10차 회담에 이어 여전히 북한 핵문제가 주의제로 다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이번 회담에서는 새로운 남북경협사업 등을 합의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동안 남과 북이 합의하고도 이행하지 못한 합의사항 이행에 초점을 맞춰 우선 순위와 일정을 재조정함으로써 남북관계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최근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 한·미·일 3국 등 국제사회는 일련의 정상회담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를 갖고, '대화와 압력의 병행원칙'에 따라 북핵문제를 풀어나갈 것에 합의했다. 이와 같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대북 제재와 봉쇄를 본격화해 북한 지도부를 압박하여 대량살상무기(WMD)개발을 막으려 한다. 이미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북한의 무기수출과 마약 밀거래 등 불법적인 외화획득에 대한 저지에 나서는 등 북한에 대한 '선택적인 저지(selective interdiction)'를 통한 '사실상의 경제제재'는 이미 시작됐고 볼 수 있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가중되는 남북대화의 국제적 여건이 오히려 남북관계 진전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듯 최근 북한 핵문제로 주춤했던 남북교류협력사업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6월 27일 금강산 관광 재개와 함께 제7차 이산가족상봉사업이 금강산에서 진행 됐고, 개성공단 착공식이 지난 6월 30일 개성 현지에서 열렸다.

그밖에 북한의 대외 개방관련 법령들이 공포되고, 남한에서도 경협관련 4개 합의서가 국회를 통과했다. 북한은 지난 6월 28일 지난해 11월 '특구'로 지정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 개발 규정과 이 지역에서의 기업창설·운영 규정을 최고인민회의 정령으로 제정했다고 발표했다. 남북 당국간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청산결제·상사분쟁 등 4개 합의서가 최근 우리 국회를 통과하고, 북측의 세부 시행규칙이 마련됨으로써 국내기업들이 이 지역에 진출하기 위한 법적인 근거가 마련됐다. 이와 같이 남북한 당국이 경협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개성공단 착공식을 가짐으로써 남북경협사업 등이 활기를 뛸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난 등 심각한 체제위기에 봉착한 북한은 미국과 그 동맹국의 대북 압박정책을 북한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사실상의 대북 압박정책을 취하자, 지난 6월 8일 외무성대변인이 "일단 자주권이 침해당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즉시적인 물리적 보복조치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추가적 조치'가 실현되면 한반도는 '핵 재난'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민족공조'를 강조하면서 '전민족적인 성전'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6월 18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서 "최근 미국이 북한을 압살하기 위한 심리모략전과 봉쇄책동을 전면적으로 벌리고 있다"고 비난하고, "미국이 표방하는 그 어떤 다자회담에도 더 이상 기대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밝혀, 당분간 다자회담에 응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북한은 핵문제를 둘러싼 '추가적 조치' 검토 등 대북 압박이 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공조'와 '신의'를 강조하면서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경추위 제5차회의(5.20)에서 "남측이 <핵문제>요, <추가적 조치>요 하면서 대결방향으로 나간다면 북남관계는 령으로 될 것이며 남쪽에서 헤아릴수 없는 재난을 당하게 될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는 등 남측의 대북 강경자세에 표면적으로는 반발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남과 북이 "6·15공동선언의 근본정신에 맞게 그 누가 뭐라고 하든 주변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 민족끼리 공조하여 화해와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제11차 장관급회담에 임하는 북측의 회담 목표와 전략은 '민족공조' 강조와 남북교류협력을 가속화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는 6·15 남북공동선언 이행과 민족공조를 강조하면서 한·미·일 3국과 국제사회의 '대화와 압력의 병행원칙'에 의한 대북 압박정책에 대해 강한 반발을 할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개성공업지구, 금강산관광지구 활성화 등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적극 추진을 통한 위기해소 노력에 주력할 것이다.

제11차 장관급회담에 임하는 우리 정부는 북핵문제의 조기 해결과 평화번영정책을 가속화하기 위해 북한을 설득하는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남북사이의 신뢰를 쌓고 평화번영정책을 가속화하기 위해서 우리 정부는 남북대화 채널을 통해서 새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와 한미정상회담 결과 등을 북측에 설명하고 북핵문제의 조기해결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북-미 적대관계에서 산생된 북한 핵문제의 구조적·장기적 성격을 고려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되 북핵문제의 장기화에 대비하여 북핵문제와 기타 남북현안을 분리하여 남북관계 진전을 통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향후 남북교류와 협력을 북한 핵문제의 전개상황을 보아가며 추진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는 북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북핵문제의 조속한 해결 의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지, 북핵문제와 남북교류협력을 완전히 연계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므로, 남북관계의 진전과 남북대화의 모멘텀 유지 등을 위해서 교류협력사업은 지속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북핵문제의 조기해결을 위한 '국제공조'에 계속 동참해야 할지, 아니면 독자적인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추진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핵문제란 숙제를 안고 출범한 '참여정부'는 북한의 핵관련 행위에 대한 공개 비판, '추가적 조치 검토' 시사 및 북한 핵문제 해결 이전까지 남북관계 속도조절 의지 표명, 대북정책에 있어 투명성과 국민적 합의 강조 등을 통한 대북 공세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제 우리 정부도 선택에 기로에 서있다. 국제공조를 강화하면서 공세적 대북 압박 등 '선의의 무시정책'을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핵문제와 기타 남북 현안문제를 분리하여 '포용정책'을 가속화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북핵문제의 조기해결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지속하되, 북핵문제의 구조적·장기적 성격을 고려하여 남북교류협력을 지속하는 등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수단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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