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왕이와 깜짝 만남…대북제재 합의 힘 실어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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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왕이 중국 외교부장(가운데)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에서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왼쪽)과 벤 카딘 하원의원을 만났다. 왕 부장은 전날 백악관에서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 초안에 합의했다. [워싱턴 신화=뉴시스]

미국과 중국이 24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 초안에 합의하며 대북제재의 주체가 중국으로 바뀌었다. 이전까지 국제사회에서 대북 압박 드라이브를 걸었던 게 미국이라면 실제 제재에 나서는 실력 행사의 주역은 중국이 된다.

미·중 ‘강력한 제재’ 논의

 결의안 초안은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수전 라이스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합의한 대로 과거보다 강력한 조항이 대거 포함됐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전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기관·개인 및 관계 기업이 대거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또 의심 화물을 실은 북한 선박의 입항 금지와 항공기 영공 통과 금지, 이전보다 강화된 북한 은행의 해외 송금·결제 엄격 제한 등이 담길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유엔 소식통을 인용, “내용이 많은 데다 (제재를 구체적으로 담은) 실질적인 초안”이라고 전했다.

 미·중 합의에 따라 유엔 안보리는 15개 이사국들을 대상으로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 회람 절차에 착수했다. 미국은 영국·프랑스·러시아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합의안을 전달하고 설명했다.

25일엔 회의를 열어 제재안을 논의한다. 미국과 중국이 만들어온 안인 만큼 러시아가 제동을 걸지 않는 한 이르면 26일, 늦어도 29일엔 제재안이 채택될 전망이다.

 결의안 초안의 주요 내용들은 중국이 행동으로 나서야 효과를 발휘한다.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관여해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북한 기관과 업체는 해외 자산이 동결되고, 개인은 여행 금지 대상이 된다. 이 제재가 실효를 거두려면 북한 기관과 업체들이 다수 진출해 있고 북한과 인적 교류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경우에 따라선 과거 미국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을 제재해 이곳의 북한 비자금을 묶었던 식의 압박 효과를 중국이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북한 선박 입항 및 항공기 운항 제한 등도 대부분 중국의 몫이다. 중국이 북한의 교역 상대이자 대외 통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KOTRA가 발표한 북한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는 90.1%였다.

이런 구조에서 중국이 제재안 초안에 도장을 찍었다는 것은 향후 중국이 대북 압박의 주체로 나서겠다는 약속이 된다.

 이를 위해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계속했다. 미국은 미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제재 대상에 올렸던 기관·개인 중 그간 유엔 안보리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30개 안팎의 북한 기관·개인을 안보리 제재 대상에 넣을 것을 중국에 요구했다.

대남 공작을 총괄하는 정찰총국, 각각 핵과 미사일 개발을 담당하는 원자력공업성·국가우주개발국이 해당된다.

한 소식통은 “이번엔 제재 대상이 크게 늘어난다”고 밝혀 이들 기관이 포함됐음을 시사했다. 북한 선박의 전 세계 항구 입항 금지, 북한 은행의 국제금융시스템 접근 차단, 대북 원유 수출 중단 등도 당초 미국의 요구 사항이었다. 이는 일정 부분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백악관을 방문한 왕 부장이 라이스 보좌관과 대북 제재를 놓고 회동할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예고 없이 찾아 왕 부장을 면담한 것도 중국이 향후 실질 제재에 나서도록 독려하는 우회적 의사 표시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은 왕 부장에게 다음달 말 워싱턴에서 열리는 4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와서 성공적인 회담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대북 채찍을 들기로 합의한 데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지용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은 사드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며 “북한에 대해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중국은 한국이 사드를 놓고 타협을 하지 않자 사드 배치를 늦추기 위한 시간 벌기 차원에서 미국을 상대해 대북제재에 동참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중국이 향후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대북제재에 나서면서 이를 사드 배치를 막는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왕이 부장이 지난 23일 케리 장관과의 회담에서 ‘미국의 한반도 사드 배치 계획에 반대한다’는 중국 측의 엄정한 태도를 표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뉴욕·워싱턴=이상렬·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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