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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더민주, 환부든 아니든 도려내야 할 상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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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컷오프(하위 20%) 대상에 올라 공천 심사에서 배제된 유인태 의원은 “이제 국회를 떠난다. 놀러 올 때 말곤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경빈 기자]

“자유롭다. 이제 (흰머리 안 보이게) 염색도 좀 안 해도 될 거 같고.”

컷오프 승복한 ‘친노’ 유인태

 더불어민주당 유인태(3선·서울 도봉을) 의원이 25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공천 배제 첫 소감이었다.

유 의원은 전날 당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공천 탈락을 통보받은 뒤 “평소 물러날 때를 아는 게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저의 물러남이 당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깨끗이 결과에 승복했다. 그런 유 의원을 만나 소감을 들었다.

 유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친노(親盧) 중진 의원이다. 청와대 수석 시절 ‘엽기수석’이란 별명을 얻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다.

 -문재인 대표 시절 만든 제도로 나가게 됐다.

 “당이 어려울 때 시스템 공천을 (확정)한 거고, 본인이 만든 혁신안이었으니…. 평가위가 나름대로 공정하게 사심 없이 평가했다고 믿는다. 다만 정당을 모르는 외부인이 우리를 평가하다 보니 아쉬움은 있다. 결국 여론조사가 결정적이었다. 호남은 당원들이 (여론조사) 매뉴얼에 숙달된 선수들이다. 여론조사 한다고 하면 좌라락 수백 명 조직으로 움직인다. 매뉴얼대로 나이도 낮춰서 답하고. 그렇게 하면 10%가 20%로 오르지. 하지만 우리 (도봉을) 같은 데는 경선 한 번도 안 해 봐서. 겨우 (여론조사에 대비) 한다는 게 ‘집으로 전화할지 모르니까 잘 받으세요’ 했는데, 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

 -억울하지 않나.

 “결국 자업자득인데 어떻게 하겠나. 평가안이 엉터리라고 해도 결국 우리 당이 그만큼 위기에 처해 있으니, 이렇게라도 잘라내야 당을 살릴 수 있다고 본 거 아니겠나. 그게 비록 정확한 환부가 아니라 아무데나 도려내야 한다고 해도 말이다. 내 지역구가 험지라 나 아니면 치를 수 없는 선거도 아니고.”

 -컷오프된 홍의락(초선·비례) 의원은 탈당을 선언했다.

 “거긴 당연한 일이다. 문희상·홍의락 의원을 배제시키는 일은 정당이 할 짓이 아니다. 적지에서 싸우는 의원들을 격려해 주지는 못할망정….”

 -국회에서 하고 싶었으나 못 이룬 일은.

 “분권형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이다. 그게 되지 않고는 나라가 암담하다. 양당제의 폐해는 지역주의 말고도 양극단으로 원심력이 작용한다는 데 있다. 중도 보수, 중도 진보가 극우·극좌의 눈치를 보게 된다. 진영논리가 극심해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4년 뒤에는 다 몹쓸 사람이 된다. 사사건건 모든 걸 대립하고 에너지를 거기만 쏟으니 정치 혐오·반(反)정치 문화로 이어지고.”

 -국민의당은 양당제 타파를 주장한다.

 “씁쓸한 게 안철수당도 양당 기득권 체제를 타파해야 할 제도라고는 하는데 그러겠다는 사람들이 호남 지지에만 기대 가지고… . 지들이 양당 기득권 중 한쪽을 망가뜨려 그 자리를 대신하고 싶다는 시도지 진정인가.”

 -정치가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국회는 이해관계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300명 대표들이 모여서 타협하라고 만든 곳이지, 40% 지지를 가지고 과반 의석을 얻었다고 해서 100의 권력을 행사하려는 게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은 아니다. 자꾸 이렇게 대결의 정치로 가면서 정치 혐오가 강화되면 결국 나라 앞날이 암담해지는 거다. 타협하라고 만든 게 국회인데 타협해 봐라. 양극단에 있는 쪽에서 누더기가 됐네, 지조가 있네 없네 한다. 우리도 (열린우리당 시절) 과반일 때 국가보안법 등을 마음대로 폐지하려던 우를 범했다. 지금도 모든 법안이나 정책이나 우리의 의견이 6대 4 정도로만 반영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1988~90년 (평민당) 김원기 원내총무 시절 정권(민정당)의 김윤환 원내총무와 협상을 통해 5공 청산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 백담사 보내고, 다 의회가 결정해 냈던 거 아닌가. 타협의 정치를 해서. 그 과정에 정치인들은 상당히 신뢰를 받았다.”

 -앞으로 계획은.

 “당장에야 20여 년 지켜 왔던 지역구에서 새로운 사람이 이기도록 돕는 일이다.”

 -정치 후배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어디 좀 국립묘지 같은 데 가도 초선이면 지가 알아서 뒷줄에 서고. 그때 어떻게든지 기를 쓰고 앞줄에 서 보겠다는 애들이 있다. 대개 그런 애들이 떠. 그런 애들이 SNS를 잘해. 그게 당을 천박하게 만들고 사고를 친다. 5000만 공동체를 놓고 고민하려고 하면 염치도 알고 예의도 있고, 사고도 남을 좀 더 배려하는 마음도 있어야 한다.”

 - 그런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이 되라는 거죠.”

글=이지상 기자 ground@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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