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당사자도 모르는 카카오톡 압수수색은 인권침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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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당사자에게 통지하지 않고 카카오톡 서버에서 대화 내용을 압수수색한 데 대해 위법하다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이번 결정은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인터넷 메신저 압수수색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어서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1단독 김용규 판사는 집시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대학생 용혜인(26)씨가 자신의 카카오톡에 대한 검경의 압수수색을 취소해달라며 낸 준항고 청구를 받아들였다고 그제 밝혔다. 용씨는 2014년 5월 세월호 피해자 추모집회를 여는 과정에 위법성이 있다는 이유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대상은 이틀간 카카오톡 대화방 57개의 대화 내용이었다. 용씨는 1년 후 재판 과정에서 압수수색 사실을 알게 되자 취소 청구를 했다.

 법원이 압수수색 취소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당사자의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김 판사는 “형사소송법상 압수수색 시 ‘급속(急速)을 요할 때’는 피의자에게 알려주는 절차를 생략할 수 있지만 서버에 저장된 대화 내용과 계정 정보는 피의자가 은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급속을 요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카카오톡에는 내밀한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카카오톡의 국내 월간 실사용자 수가 지난해 말 40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인터넷 메신저 이용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호흡하듯 메신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바일 시대에 수사기관이 사용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화 내용을 들여다본다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A4 용지 88쪽에 달하는 용씨의 카카오톡 대화에는 이름만 올렸던 단체카톡방 대화나 용씨가 동생에게 ‘세탁기를 돌려달라’고 부탁한 내용까지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범죄 수사에 필요하다 해도 기본적 인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게 우리의 법 원칙이다. 이 원칙을 넘어 범죄와 무관한 사생활까지 넘나든다면 그것은 국가기관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검찰은 당사자의 참여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명확한 절차와 기준을 마련해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