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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취조 형사, 교도소 간수…일본서 온 두 배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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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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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의 일본 고등형사 역, ‘암살’에서 독립군의 암살작전을 돕는 기무라 역으로 출연한 배우 김인우(左), 다케다 히로미츠는 ‘대호’의 일본군 장교 역, ‘동주’의 교도소 간수 역을 각각 맡았다(右). [사진 라희찬(STUDIO 706)]

지난해 ‘암살’ ‘대호’에 이어 ‘동주’ 등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면서, 물 만난 듯 맹활약하는 두 배우가 있다.

일제 강점기 영화 단골 조연
재일동포 김인우
다케다 히로미츠

윤동주 시인의 삶을 그린 영화 ‘동주’(이준익 감독)에서 악랄한 일본 형사를 연기한 김인우(47)와 ‘대호’에서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포획하려는 일본군 장교 역을 맡은 다케다 히로미츠(35)다.

각각 재일동포와 일본인인 둘은 핏줄은 다르지만, 한국영화에 매료돼 8년 전부터 충무로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해어화’ ‘덕혜옹주’ ‘밀정’ 등 개봉 예정인 일제 강점기 배경의 영화들에도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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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의 일본 고등형사 역(左), ‘암살’에서 독립군의 암살작전을 돕는 기무라 역(右). [영화사 제공]

 김인우는 ‘동주’에서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를 집요하게 취조하는 일본 고등형사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눈 밝은 관객이라면 그가 ‘암살’에서 독립군의 암살작전을 돕는 일본인 기무라 역으로, ‘미스터 고’에서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주로 나왔던 배우란 걸 금세 알아챘을 터다.

 그는 일본 센다이 출신의 재일동포다. 배우가 되려고 어릴 때 도쿄로 상경해 연극·영화에 출연하며, 안무 강사까지 했다.

인생 최악의 슬럼프에서 그를 구원해준 건 한국영화 ‘집으로...’ 였다. “돈과 인간관계 모두 잃고, 건강까지 악화됐을 때 그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어요. 부모를 일찍 여읜 내게 어머니 같은 느낌을 준 영화였습니다. 그 때 한국영화에 매료돼 8년 전 한국에 왔습니다.”

 그가 ‘동주’에 캐스팅된 건 일본 야쿠자로 출연한 ‘깡철이’ 덕분이었다. 영화를 본 이준익 감독이 전화를 걸어 “센 느낌과 차분한 느낌을 함께 갖고 있다”며 출연을 제안했다. 악랄한 역할이었지만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 한국에 온 겁니다. 재일동포로서 우리의 슬픈 역사를 잘 알기에, 같은 잔인한 연기를 해도 일본 배우보다 더 실제적인 연기를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는 “대본에는 없지만, 내가 연기하는 형사는 엘리트 경찰이자, 동생이 만주에서 전사한 슬픔을 가진 인물이라고 상상하며 연기했다”고 했다. 영화 마지막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윤동주의 얼굴에 그 동생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의도치 않게 눈물을 흘렸다.

 “형사는 처음에는 윤동주와 송몽규가 죄인이라 믿고 강압적으로 취조하지만, 점점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되죠. 나중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고, 감독도 그걸 원했어요.”

 그는 극중 윤동주가 ‘우리가 맞는 주사가 뭡니까’라고 물을 때부터 배우 강하늘이 진짜 윤동주로 보였고, 배우 박정민이 연기 몰입을 위해 분장하는 내내 자신을 째려봤던 것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집으로...’로 내 인생이 바뀐 것처럼, ‘동주’ 또한 사람들의 삶에 큰 자극이 됐으면 좋겠어요. 과정도, 결과도 모두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그는 상반기 개봉하는 단편 인권영화 ‘과대망상자들’에서 처음으로 한국인 역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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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의 일본군 장교 역(左), ‘동주’의 교도소 간수 역(右). [영화사 제공]

다케다 히로미츠는 일본 도쿄에서 연극 배우로 활동하던 중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고 한국영화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리곤 한국에 건너와 9년 째 생활하고 있다. ‘불꽃처럼 나비처럼’ 출연을 계기로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한국말이 완벽하지 않고 지명도도 높지 않은 일본 배우에게 일이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대만에서 활동하기로 결심하고, 짐까지 부쳤던 그를 다시 눌러앉힌 영화는 2014년 ‘명량’이다. 최고 관객동원 기록을 세운 이 영화에서 이순신(최민식)에 맞서는 일본군 장수로 출연했다.

 이후 일제 강점기 배경의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면서, 그는 일거리가 많아졌다. ‘대호’에선 호랑이 가죽에 눈이 먼 일본군 고관(오스기 렌)의 부관으로 출연했다.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는 “배우가 흥행에 신경써서는 안된다는 최민식 배우의 충고를 가슴에 새겼다”고 했다.

 ‘동주’에서 그는 생체 실험에 고통스러워하는 윤동주를 동정의 시선으로 지켜보는 후쿠오카 교도소의 간수장 역할을 맡았다. 송몽규의 비중이 커지는 바람에 그의 대사 분량이 편집됐지만, 그는 “의미있는 영화에 출연한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영화 출연 전에는 윤동주를 잘 몰랐어요. 그의 짧았던 삶을 알아가면서 화가 나고, 치가 떨렸습니다. 윤동주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을 생체 실험으로 죽인 일본 군부의 만행은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 나치와 다를 바 없어요.”

그는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의 일본어 선생 역할도 도맡아 한다. “한국영화에서 일본어 대사가 성의없게 처리되는 경우가 있는데 너무 아쉬워요. 일본의 한국영화 팬들이 이상한 일본어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겠어요.”

 4월에 개봉하는 ‘해어화’에 이어 촬영 중인 영화 ‘밀정’, 상반기 방영 예정인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가제) 등 출연작이 빼곡하다. 일본 원전 문제를 비판한 김기덕 감독의 ‘스톱’에서는 주역도 따냈다. 역시 “한국영화에 한국인 역할로 출연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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