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문화 정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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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 낙산 기슭에 있는 혜화동 성당은 건축사적 비중이 크다. 43년 전 건물이 완공됐을 때 많은 사람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형태가 기존의 뽀족한 첨탑 성당과 달랐기 때문이다.

설계자 이희태(1925~81)씨는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고 산세가 완만한 곳에선 높은 첨탑을 가진 고딕 성당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 건물 높이를 크게 낮췄다. 이후 다양한 양식의 성당 건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 혜화동 성당 내외엔 한국인 미술가가 만든 교회 미술품이 많다.

예컨대 성당 입구 좌우에 있는 원로 조각가 최종태(71)씨의 '성모상(사진)'과 '성요셉상'은 서구 기독교 작품과 다르다. 둥글고 원만한 곡선에서 동양의 선(禪), 혹은 명상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국 천주교가 관련 종교 문화재 정리.연구 사업에 착수했다. 여러 성당에 흩어진 각종 예술품.성물(聖物)들을 조사하고 미술사적 의미도 살필 예정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앞으로 5년 동안 해당 목록을 완성하는 한편 그간 천주교가 한국 미술에 끼친 영향 등을 종합 점검하기로 했다.

사실 한국 미술사에서 천주교의 기여는 무시할 수 없다. 1891년 세워진 서울 중림동(약현) 성당은 서양 고딕 양식을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했고, 현대 한국 건축을 대표했던 김수근(1931~86)도 서울 불광동 성당, 마산시 양덕동 성당 등 빼어난 작품을 남겼다.

서울대교구 성미술 감독 정웅모 신부는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온 지 2백년이 넘었지만 아직 반듯한 박물관 하나 없을 만큼 문화 분야에 관심이 적었다"며 "교내외 전문가가 참여하는 이번 사업은 한국 가톨릭의 문화적 위상을 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천주교는 비록 서구에서 들어왔지만 문화는 한국인의 심성을 담는 쪽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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