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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인천공항 반대론자들은 지금…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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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 성년이 되어 고향을 떠난 이후 명절은 귀향의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모두들 어렵게 구한 차표를 들고 각지로 떠나는 발걸음이 모여드는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의 북적거림은 활기찬 정경이었다. 지금도 귀성길은 지체되지만 KTX도 있고 도로망도 좋아져서 예전처럼 귀성전쟁은 치르지 않는다. 이와 달리 연휴를 맞아 해외로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나날이 복잡해지는 장소는 공항이다. 특히 음력 설날은 중국에서도 명절로 지내는 춘절이기에 중국 관광객인 유커가 그야말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인천공항은 북새통을 이룬다. 올해 춘절에도 15만 명 가량의 유커가 우리나라를 찾았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취직 후 해외 출장으로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처음 타면서 신기했던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지만, 비행기 탑승이 평생의 경험이 되었던 시절은 전설처럼 까마득한 과거가 됐다. 해외 신혼여행 정도는 일찍이 흔해졌다. 요즘은 중등학교 수학여행에서 중·장년의 동남아 골프여행, 동네 산악회의 해외 산행 등 다양한 여행객이 인천공항에 몰린다.

평상시에도 혼잡한 공항을 이용하면서 인천공항 건설을 둘러싸고 10여 년 동안 지루하게 이어졌던 소모적인 논쟁을 가끔씩 떠올린다. 1990년 정부는 당시 국제공항이던 김포공항의 수용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고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바다를 매립하는 공항 건설을 발표했다. 곧바로 환경단체가 철새 서식지 파괴와 환경 훼손을 내세워 반발했다. 뒤이어 이른바 공항-토목 전문가들과 정치인도 가세했다. 반대론자들은 비슷한 시기에 완공 예정인 상하이 푸둥, 홍콩 첵랍콕, 일본 간사이 공항에 비해 입지 경쟁력이 떨어지는 인천공항이 허브 공항으로 실패할 것이며,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을 감안하지 않아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바다 매립지는 지반 침하가 불가피하고, 과다한 공사비로 수익성을 맞추기 어렵다는 점도 반대 논리도 내세웠다. 약방의 감초처럼 전문가의 의견수렴이 미흡한 가운데 졸속으로 결정됐다는 비난도 곁들여졌다.

공항 건설이 예정대로 진행돼 개항이 임박해진 1999년에는 항공관제와 수화물 처리를 포함한 IT시스템의 정상 가동이 어렵다는 문제를 제기되면서, 무리한 개항 일정에 맞추다 보면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괴담성 주장까지 나왔다. 국회에서는 부실 시공을 질타하고 국민정서에 맞지 않게 고급 자재를 쓴다는 억지를 부리고 언론까지 거기에 가세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1년 3월 29일에 개항한 인천공항은 단시간에 동북아 허브공항으로 위상을 굳히면서 세계적 공항으로 떠올랐다. 2005년 출입국자 3000만 명 시대가 열렸다고 자축했는데 2015년에는 6637만 명으로 폭증했다. 인천공항이 없었다면 지난해 740만 명에 육박하는 유커를 받아들일 방법이 없었고, 항공화물 처리 용량 부족으로 최근 부상하는 해외직구 등도 희망사항에 불과했을 것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모든 사항을 100% 예상할 수는 없고 판단 오류는 언제나 발생한다. 중요한 것은 판단오류 자체가 아니라 오류를 반성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느냐다. 인간사 어떤 일이거나 안 되는 이유를 100가지 갖다 붙이기가 되는 이유 3가지를 주장하기보다 손쉽다. 인천공항을 이용할 때마다 당시 목소리를 높이던 반대자들은 해외로 배 타고 나가고 있을 것인지 혼자 생각하면서 지금도 실소를 금치 못한다.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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