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 꿈 꿨던 서울대생 “운동해도 책 놓지 말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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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에서 축구선수로, 골키퍼에서 서울대 입시준비생으로 진로를 두 번 바꿨어요. 모두가 나서서 말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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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원(19·용인 상현고) [사진 학생 본인 제공]

고교 축구계에서 촉망받는 유망주였던 전태원(19·용인 상현고)군이 서울대를 목표로 다시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 걱정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서울대는 체육특기생을 뽑지 않고, 체육 관련 학과라도 경력이나 수상실적이 아닌 학교 성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군은 전국대회에서 우수 골키퍼상을 받으며 기량이 무르익었던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미련없이 축구부를 나왔다. 그리고 1년만에 당당히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수시모집 일반전형에 합격했다.

전군은 여섯살 때 2002년 월드컵을 본 이후 이운재 선수같은 골키퍼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대학시절까지 농구선수였던 전군의 아버지는 운동선수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다. “초등학교 땐 항상 반에서 3등 안에 들 정도로 성적이 좋았어요. 운동을 시작하면 공부와 멀어지고, 실패할 경우 끝내 돌아올 곳이 없을까봐 걱정이 많으셨죠.”

하지만 꿈을 포기할 순 없었다. 결국 중학교 2학년 여름, 전군은 부모님 몰래 경기도 포천의 김희태축구센터를 찾아갔다. 당시 전군을 지도했던 조철환(33) 코치는 “기본기가 부족해 그야 말로 ‘동네 축구’ 수준이었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정만큼은 어마어마했다”고 말했다. 전군의 열정에 부모님은 결국 선수생활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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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학생 본인 제공]

아버지의 운동신경을 물려받은 덕인지, 전군은 어릴때부터 축구를 해온 친구들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았다. 1년 후인 중학교 3학년부터는 주전으로 뛰며 기량을 뽐냈다.

동시에 공부도 놓지 않았다. 전군이 선수생활을 위해 전학 간 포천 이동중학교에서는 축구선수들도 6교시까지 수업을 모두 들었다. 매주 목요일엔 선생님들이 훈련소를 찾아와 보충수업을 해주기도 했다. 그라운드와 교실을 오가는 일이 만만치 않았지만, 전군은 전교 7등에 오를 정도로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중학교 졸업 후엔 전군의 가능성을 눈 여겨보고 스카우트를 제의한 경남 거제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거제고 유니폼을 입고 참가한 지난 2014년 2월 춘계대한축구협회장배 대회에선 팀의 준우승을 이끌며 우수 골키퍼 상을 차지했다. '축구선수 전태원'의 앞날은 밝아보였다.

하지만 그 시기, 전군은 자신의 한계를 느꼈다. “키가 180cm에서 더이상 자라지 않았어요. 한국은 유독 키 큰 골키퍼를 선호하는데, 이대로는 어렵겠다 싶었죠. 키 크는 건 노력해서 되는게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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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학생 본인 제공]

고등학교는 중학교때처럼 축구와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독서실에 갔지만, 성적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 다른 길을 준비하려면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했다. 고민 끝에 전군은 자신이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일에 미래를 걸기로 했다.

결심이 서자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그 해 여름, 전군은 아예 축구부가 없는 용인 상현고등학교로 전학을 결정했다. 일반 학생들을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쉬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선생님을 찾아가 질문했다.

선수로 뛰면서도 꾸준히 책을 붙잡았던 습관이 큰 도움이 됐다. 축구로 단련된 체력도 그만의 강점이었다. “친구들은 12시쯤부터 피곤한 기색이 보였는데, 저는 새벽 2시까지 끄떡 없었죠. 그렇게 부족했던 공부시간을 따라잡았어요.” 축구선수의 체력과 끈기로 무장한 전군은 결국 고등학교 3학년에 들어서며 내신 2등급을 유지했고, 당당히 서울대에 합격했다.

전군은 학생 선수들이 공부를 병행해야만 선수 생활이 갑자기 끝나게 됐을 때 절망하지 않고 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운동선수는 운동만 하면 된다는 건 위험한 생각이에요. 모두가 스타 선수가 될 수는 없거든요.” 실제 전군의 축구부 동료들 중 대학이나 프로팀의 선택을 받은 선수는 많지 않다. 선수생활을 마감한 이들은 유소년 축구팀 등에서 코치를 하거나, 전혀 다른 길로 가 새로 시작해야만 한다.

꿈을 포기하는 게 쉽지는 않죠. 하지만 선수를 하지 않아도 지도자, 에이전트, 방송 캐스터, 체육 행정가 등 축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요. 저도 대학 공부를 바탕으로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할 겁니다. 저처럼 다양한 가능성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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