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타순? 포지션? 포수라도 봐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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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메이저리그(MLB)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한 김현수(28·볼티모어 오리올스). 19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새러소타의 에드 스미스 스타디움에 나타난 그는 라커룸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한국말로 인사했다. 김현수 라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과의 거리는 꽤 멀었다. 김현수는 오리올스 선수들에게 일일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김현수는 "이 팀에선 내가 외국인 선수이기 때문에 다들 먼저 말을 걸어온다. 한국말로 인사를 어떻게 하는지, 선배와 후배에게 어떻게 다르게 말하는지를 물어본다. 그래서 아침 인사를 한국말로 하고 있다"며 웃었다. 이달 초 새러소타 캠프에 합류해 MLB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부담·설렘·걱정·기쁨을 모두 똑같은 비중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외야수 라이언 플래허티(30)가 가장 반갑게 맞아줬다. 시카고 컵스에서 뛸 때 이학주·하재훈과 같이 지내서인지 먼저 다가와 캐치볼을 하자고 했다. 나이 어린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인사하냐고 물어서 '안녕하세요'라고 했더니 정말 좋아하더라."
선수들이 이름을 어떻게 부르나.
"수(Soo)라고 부른다. '현'은 발음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훈련 스케줄 표에도 '수'라고 적혀 있다."
구단 부사장 브래디 앤더슨이 칭찬을 많이 하던데.
"부사장님이 내게 '현수, 네 칭찬을 많이 했으니 잘해야 한다. 네가 못하면 나도 위험해진다'며 웃으시더라."

앤더슨 부사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현수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계속 때려낸다. 정말 간결한 스윙을 갖고 있다"며 "영어가 능숙하지 않지만, 같이 놀면 매우 재미있다. 또 일(야구)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래 훈련을 많이 하는 스타일인데.
"미국 훈련 강도가 한국만큼 세진 않다. 그러나 한국은 사나흘 힘들게 하고 하루 쉬지만 여기서는 휴일 없이 계속하는 점이 다르다. 한국에선 배팅 1000개를 할 때 항상 전력을 다하진 않는다. 대신 미국에서는 라이브 배팅 등의 과정 없이 바로 시범경기에 들어간다. 그냥 열 번 하느니 제대로 세 번 하자는 것 같다. 그런 차이를 느끼고 적응하는 중이다."
미국에선 첫 시즌인데 사실상 주전을 보장 받았다. 동료들의 시선은 어떤가.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MLB 주요 선수들은 캠프 공식 오픈(20일)에 맞춰서 오니까. 지금 있는 선수들과는 잘 지낸다. (텃세 부리는 선수가 없느냐는 질문에) 모르겠다. 해도 내가 못알아 들을 테니까. 텃세 같은 건 없다고 해두자.(웃음)"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텐데.
"지난해 강정호(29·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워낙 잘해서 다른 한국 선수들도 MLB에 올 수 있었다. 우리에게 큰 선물을 했다고 생각한다. 정호가 묵고 있는 숙소가 가까워 자주 왕래하며 밥도 해먹는다. 내가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 그래야 후배들이 MLB에 또 올 수 있을 테니까."
타순과 포지션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어제(18일) 벅 쇼월터 감독님을 처음 만났다. 카리스마 넘치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편안하게 대해주시더라. 별 다른 말씀 없이 '잘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셨다. 감독님이 (내 체격을 봤으니) 1번 타자로 쓰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선수는 모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포수를 보라고 해도 봐야 한다."

지난 18일 MLB 홈페이지는 볼티모어의 라인업을 예상하면서 김현수가 2번 타자·좌익수를 맡을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현실적인 타순과 포지션이다. 그러나 김현수의 기록(2015년 두산 베어스 시절 삼진 63개/볼넷 101개)을 보고 1번 타자 후보로 꼽는 현지 언론도 있다. "포수라도 보겠다"는 김현수의 말은 이런 논란을 신경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MLB에서 자신의 타격이 통할 수 있을까.
"나도 궁금하다. 3월 시범경기를 하면 어느 정도 느끼지 않을까. MLB 투수들 공이 한국 투수들보다 빠르고 싱커 등 낯선 구종도 상대해야 한다."
한국에서의 타격 스타일을 이어갈 건가.
"내가 볼넷을 많이 얻는 이유는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투수들이 어렵게 승부를 하니까 볼카운트 싸움에 유리하다.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을 파악해 그 안으로 오는 공은 다 치려고 했다. MLB에서도 똑같이 할 것이다. 볼카운트가 몰리면 파울이라도 많이 만들어낼 것이다."
야구장 밖 문화에는 적응했나.
"아직 멀었다. 오늘 라커룸에 여기자들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옷을 갈아입으러) 화장실에 가야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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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여기자들도 클럽하우스 개방시간에 마음껏 돌아다니며 취재한다. 김현수도 미국의 관행을 잘 알지만 옷을 훌렁훌렁 벗을 만큼 적응한 건 아니다. 김현수의 통역원은 미국 기자들에게 "김현수가 문화충격(culture shock)을 받았다"고 전했다.

새러소타=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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