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동네북 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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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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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논설위원
복지전문기자

여기서 청년, 저기서 청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복지 공약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올해는 유난히 ‘청년 주택’을 외치는 데가 많다. 더불어민주당이 임대주택 5만 가구를 매입해 청년 15만 명에게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당도 35세 이하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청년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재원의 출처가 요상하다. 국민연금기금 507조원을 노린다. 더민주당은 10조원을 꺼내 쓰겠단다. 두 야당이 세금을 쓰는 게 아니니까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국민연금을 만만하게 보기는 이 정부도 만만찮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중순 국민연금으로 뉴스테이(중산층용 임대주택)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인수위원회 시절 기초연금 재원의 30%를 국민연금에서 갖다 쓰려다 혹독한 비판을 받고 없던 일로 했다. 또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긴 사람에게 기초연금을 덜 주는 기상천외한 정책을 내놓은 후 온갖 반대에도 끝까지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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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을 갖다 쓰되 이자만 정확하게 쳐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청년에게 싼 집을 제공하려면 국민연금에 이자를 제대로 쳐주기 쉽지 않을 터이다. 그래도 공약으로 들고 나온 걸 보면 수익 보장은 뒷전으로 미룬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그동안 노인주택 등의 복지에 수차례 국민연금을 쓰려다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이유도 셈이 잘 나오지 않아서다. 그런 게 아니고 대체투자(부동산 투자)라면 수익률(2014년 12.5%)까지는 아니더라도 총수익률(5.25%) 언저리는 보장해야 한다. 수익을 무시할 거면 국민 동의가 필수다. 한번 빗장이 풀리면 홍수에 둑 무너지는 꼴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국민연금을 무시하는 데가 또 있다. 국립대병원 직원 2만4000여 명이 다음달 국민연금에서 사학연금으로 갈아탄다. 사립학교 직원도 아닌 데다 후학 양성에 기여하는 바가 없는데도 기를 쓰고 국민연금에서 탈출한다. 국민연금을 ‘열등연금’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듯하다. 정부는 뭘 했을까. 사학연금을 담당하는 교육부 이영 차관은 국회 법률개정안 심의 때 “전체적으로 이견이 없다”고 답했다. 국민연금 담당인 보건복지부는 이 법안에 대한 의견 개진 요청을 받고 의견조차 내지 않았다. 2156만 명의 국민은 미우나 고우나 국민연금 말고는 매달릴 데가 없다. 그런데 바람이 여기저기서 나무를 흔들어댄다. 나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