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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정보 독점, 누구를 위한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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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용수 기자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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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연일 ‘폭탄’을 터트리고 있다. 말(言) 폭탄이다.

 지난 12일 “북한이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을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전용했다”고 하더니, 일요일인 14일엔 “북한이 노동자들의 임금 70%를 노동당 서기실(비서실)에 상납하고 이게 WMD 개발에 사용됐다”고 말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다.

 홍 장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지금까지 모두 4312억원을 WMD 개발에 전용한 셈이다. 정부가 개성공단이 가동을 시작한 이래 6160억원을 북한에 전달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6160억원X70%).

 여기서 의문 한 가지. 2012년 12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은하-3호)을 발사하자 정부는 은하-3호 발사에 5억~7억 달러(약 6000억~8000억원)의 비용이 들어갔다고 추정했다. “축포 한 방으로 옥수수 250만t 살 돈을 날렸다”고도 했다. 하지만 2015년까지 12년간 전달된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총 임금으론 미사일 한 번 쏘기에도 부족하다. 북한은 지금까지 장거리 미사일을 6차례 쐈다. 아무튼 그렇다 치자. 정부는 왜 이제야 이 사실을 공개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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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보수 진영에선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대북 지원 물품 등이 북한 군으로 유입되거나 WMD 개발에 사용된다는 의혹을 십여 년 전부터 제기해왔다. 그때마다 정부는 부인했다. 노무현 정부건, 이명박 정부건 마찬가지다. 홍 장관은 “개성공단의 의미를 생각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국제사회에도 설명해왔다”고 해명했다. 남북관계를 생각해 공개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번 공개로 남북관계는 영영 물 건너간다는 건데, 과연 그래도 되는 건가. 통일부는 오늘만 살고 말 건가.

 정보 독식과 자의적인 활용에는 국방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7일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한국 땅에 떨어질 수도 있었다. 우리 국민은 일본 언론의 중계로 이 사실을 처음 알았다. 국방부가 미국이 정보를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만 알고 정작 국민에겐 관련 정보를 감췄기 때문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협상도 그랬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은 지난 2일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공식 협상을 제안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기자들에게 “3No”(결정도, 협상 요구도, 협상도 하지 않음)라는 얘기만 되풀이했다. 7일 북한이 미사일을 쏘자 그제야 뒷북 발표를 했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보의 공개는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핵실험에 이어 미사일 발사 등 국가 위기 상황에서 정부 행태를 보면 ‘국민’보다 ‘부처 이기주의’나 ‘보신주의’를 위해 중요한 정보를 활용한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